가시리 당나미문씨아기당 ( 당나미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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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남제주 가시리당 나무문씨아기당
남제주 가시리당 나무문씨아기당
민간신앙
유적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는 마을의 수호신인 당나미문씨아기를 모시는 신당. 마을신당.
이칭
이칭
문씨아기당
목차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는 마을의 수호신인 당나미문씨아기를 모시는 신당. 마을신당.
내용

마을 안 당남우영이라는 곳에 있다. 당은 큰 후박나무를 중심으로 잡목이 우거져 있고, 그 앞에 돌로 제단을 만들었으며, 주위를 돌담으로 울타리를 두른 형태이다.

신의 이름은 당나미문씨아기인데, 잘 위하면 수렵의 풍요와 여러 가지 복을 내려주고, 위하지 않으면 옴 등 여러 가지 피부병과 눈병을 앓게 한다고 한다.

본풀이에 따르면 신은 본래 가시리문씨 영감의 딸이었다 한다. 딸이 일곱 살 때에 들판에 딸기를 따먹으러 갔다가 모진 강풍에 길을 잃어 산야를 헤매다가 한라산 백록담에 가서 7년 동안을 살았다.

7년 동안 몸뚱이는 산 속의 가시덤불에 긁혀 허물이 생기고 나무같이 되어 이끼가 돋고, 얼굴과 손발만이 사람모양이었다. 이때 호근리 허 포수가 사냥하러 갔다가 짐승인 줄 알고 쏘려다가 사람임을 확인하고 문씨 영감에게 데려다주었다.

문씨 영감은 7년 동안이나 찾던 딸을 만나 기뻐서 맞이하였으나, 딸은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한라산의 산신백관(山神百官)입니다.” 하고 세상일을 척척 알아맞히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해에 정의현(旌義縣)에서 인궤(印櫃: 관아에서 쓰는 인을 넣어 두던 궤)를 잃어버려 찾지를 못하자, 할 수 없이 문씨 아기를 청해다 찾아주도록 부탁하였다. 문씨아기는 통인(通引:지방관아의 잔심부름하던 사람)이 숨겨놓은 곳을 알아맞히어 인궤를 찾아주고 후한 대접을 받고 돌아왔다.

그리고 부모에게 “나는 산신백관이 될 사람이니 죽으면 아버지가 살던 당남우영 큰 바위 아래 좌정하여 정축일에 마을사람들한테서 치성을 받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이곳에 당을 만들어 문씨 아기를 모시고 위하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정축일이 되면 마을 부녀자들이 제물을 차려와서 심방을 빌려 가내 안전과 생업의 풍요를 개별적으로 기원한다.

참고문헌

『제주도무속자료사전』(현용준, 신구문화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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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현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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