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달리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당이다. 마을에서 1㎞쯤 떨어진 ‘더러물’이라는 곳에 당이 있는데, 본래 경주 김씨 집안의 집터였다고 하며 현재 그 8대 손이 살고 있다. 당은 본래 집터였음을 짐작할 수 있게 고목이 방풍림처럼 둘러 있고, 그 안에 13평 정도의 당집이 지어져 있다.
지붕은 원래 초가였던 것을 슬레이트로 갈아 덮었다. 당 내부에는 시멘트로 제단을 넓게 만들고, 그 안쪽에 제상을 세워 그 위에 신상(神像)과 신의(神衣)를 넣은 함을 모셔놓고 있다. 신상은 길이 50㎝ 정도의 길쭉한 나무토막인데, 비단으로 만든 신의를 다섯 벌씩이나 겹쳐 입혀놓은 것이 5개나 있다. 당굿을 할 때는 이 신상을 내놓아 모신다. 그리고 당집 안에는 길이 2m, 너비 35㎝ 가량의 오색 천 6매를 달아맨 ‘백맷기’라는 신기(神旗)가 있는데, 기폭 끝 두 귀에는 작은 방울을 하나씩 매달아놓았다. 당굿을 할 때에는 이 기를 높이 달아맨다. 이 당의 신은 황서국서 어모 장군(禦侮將軍)과 이 신을 처음 모시기 시작한 김씨 영감이며, 제일은 매년 정월 초이튿날과 7월 초이튿날로 두 번이다.
전에는 매년 매인 심방이 하루종일 당굿을 했는데, 근래는 각 가정에서 제물을 가지고 와서 심방(무당)이 개별 축원하는 형식으로 간단히 하게 되었다. 이 당신에게는 쌀로 만든 떡이나 메·채소·과일·술 등은 다 올려도 돼지고기는 금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 마을에서는 정월 초이튿날의 당굿의 부정을 피하기 위하여, 설날에 돼지고기를 일체 먹지도 않고 차례에도 올리지 않는다.
본향당의 본풀이에는 황서국서 어모 장군 신을 당신으로 모시게 된 내력을 설명해놓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서울의 황 정승이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막내아들이 황서국서 어모 장군이다. 황 정승이 병이 들어 백약이 무효인 때, 황소의 피를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점괘가 나왔다.
나라에서는 황 정승이 살아나면 역적이 될 것이라 하여, 백정들을 모조리 잡아 가두어 소를 못 잡게 만들었다. 할 수 없이 황 정승은 아들들에게 소를 잡아달라고 하였다. 큰아들과 둘째아들은 이를 거절하였는데, 막내아들은 참실로 소의 목을 묶어 고함을 지르니 소가 죽으므로 그 피를 뽑아서 아버지를 살려냈다. 나라에서는 그 아들을 역적으로 몰아 처형하려 하자, 제주도로 피난하여 들어왔다.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로 배를 대고 도내 각처를 돌며 좌정할 곳을 찾다가, 이 마을을 발견하여 좌정하기로 하였다. 이 마을에는 김씨 영감이 병이 들어 죽어가고 있었다. 황서국서 어모 장군은 김씨 영감 집 뒤의 큰 나무에 앉아 김씨 영감에게 “나를 고팡[庫房]에 모셔서 시루떡·돌래떡 등을 올려 위하면 살려주고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고 현몽을 주었다.
김씨 영감이 그대로 모시니 병이 낫고 큰 심방이 되어 거부가 되었다. 이때 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 죽게 되었는데, 김씨 영감이 사재를 털어서 백성을 구제하니 나라에서는 김씨 영감에게 통정대부(通政大夫: 정삼품 당상관의 문관 품계) 벼슬을 주었다.
그리고 김씨 영감이 죽어갈 때 신상을 하사해줄 것을 나라에 요청하니, 밤나무로 신상을 만들어주었다. 그것이 지금의 신상이며, 그 뒤 김씨 영감의 후손들이 ‘상단골’이 되어 이 신을 모셔 내려오고, 또 마을사람들이 차차 위하게 되어 마을의 수호신인 본향당신이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