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무늬토기시대 유적으로는 보기 드문 조개더미 유적이다. 1986년 제주대학교의 이청규(李淸圭)에 의해 확인되었다. 유적은 해안에 발달한 사구층(沙丘層)에 형성되었다. 조개더미에서 100여 m 정도 떨어진 곳에 유물산포지가 있는데, 대부분이 도로조성 때 유실되었다.
이 곳에서 출토된 유물의 대부분은 민무늬토기로서 적갈색 조질민무늬토기(粗質無文土器)와 마연토기(磨硏土器) 두 종류가 있다. 적갈색 민무늬토기는 아가리장식수법에 따라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는 아가리에 구멍무늬를 눌러 장식하거나 입술에 톱날 같은 골무늬를 만든 것이다. 함경도지방에서 시작해 한강 이남지방에 퍼져나갔다.
둘째는 아가리를 겹으로 하고 짧은 빗금무늬를 연속적으로 그어 장식한 이른바 팽이형 토기이다. 평안남도·황해도지방에서 성행해 그 일부가 한강 이남지방에까지 파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셋째는 앞서 지적한 두 유형의 토기 속성이 복합되어 나타난 것이다. 겹아가리와 연속빗금무늬의 팽이형 토기 장식에 구멍무늬 혹은 골아가리장식이 덧붙여진 형식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 유형은 남한강유역의 경기도 여주시 흔암리와 충청북도 청주시 내곡동 유적 등 우리나라 중부지방에서 나타났다. 이러한 민무늬토기가 제주도 상모리 유적에서 발견됨으로써 당시 남한지방과 제주도 민무늬토기문화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조개더미 유적의 대부분은 신석기시대와 철기시대에 해안 및 섬지방에 형성되었다고 하는 것이 통설이다. 민무늬토기시대 혹은 청동기시대의 것으로는 이 상모리 유적을 제외하고는 보고된 바가 없다. 그것은 이 시대 사람들은 강변 구릉상에 거주하면서 주로 농경생활을 영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안가에서 발견된 상모리 조개더미는 당시 제주도 민무늬토기인들이 다른 지방과는 달리, 농경생활보다는 어로생활에 치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유적의 연대는 같은 유형에 속하면서 이른 형식의 민무늬토기가 출토된 경기도 여주시 흔암리 유적이 서기전 7∼5세기로 추정되는 것을 볼 때, 그보다 늦은 민무늬토기 전기 후반 내지 후기 초인 서기전 5∼3세기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