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개형동기(圓蓋形銅器)’라고도 한다. 이 청동유물이 한반도 내에서 발견된 곳은 청동기시대 후기 유적인 대전광역시 괴정동과 충청남도 예산군 동서리 돌덧널무덤〔石槨墓〕유적 두 곳뿐이다.
두 점이 모두 지름 21㎝ 크기로 원형그릇의 뚜껑처럼 생겼으며, 불룩한 바깥면에 한 쪽으로 치우쳐 고리를 만들어 매달 수 있게 되었다.
두 유적은 동일한 형식의 분묘유적일 뿐만 아니라 세형동검 거친무늬거울〔粗文鏡〕, 삼각형간돌살촉〔三角形磨製石鏃〕, 흑색목항아리〔黑色長頸壺〕가 공통적으로 껴묻혀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 출토된 뚜껑모양동기도 거의 비슷한 시기의 동일집단의 소산으로 생각된다.
이 뚜껑모양동기의 용도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이에 대한 견해로는 고리가 달리지 않은 안쪽이 잘 마연되어 반들거리므로 햇빛의 초점을 모아 불을 일으키는 양수(陽燧)로 생각하는 설이 있다.
또한 오늘날 만주·몽고민족의 무당들이 수십 개의 방울·거울·조개 등을 달아서 소리가 요란하게 나는 신의(神衣)를 입고 춤춘다는 사실에서, 손에 들고 두드려 소리를 내게 하는 도구라는 설도 있다. 무당역할을 겸했던 당시의 지배자가 패용하거나 종교적 혹은 주술적 의식에 쓰이던 신구(神具)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와 비슷한 뚜껑모양동기는 요령성(遼寧省) 심양(瀋陽) 정가와자(鄭家窪子)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큰 것 4점과 작은 것 4점이 나왔다.
큰 것 중 최대의 것은 지름이 32㎝ 정도이다. 역시 불룩한 겉면에 가운데에서 약간 벗어나 고리가 달려 있다. 새끼줄모양의 동제 고리가 매달려 있고 나무편을 끼웠던 흔적이 보인다.
이 정가와자 유적은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을 껴묻은 전기 유적이라는 점만이 다를 뿐 분묘형식·흑색목항아리 및 각종 의기(儀器) 등이 대전 괴정동, 예산 동서리를 포함한 충청남도지방의 세형동검관계 유적과 공통되는 점이 많아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연대는 대체로 전자 유적은 서기전 5, 4세기경, 후자는 서기전 4, 3세기경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