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당으로 마을의 동쪽, 속칭 던더못이라는 곳 솔밭 속에 있다. 당은 10평 정도의 초가집으로 되어 있는데, 집안 안목에 ‘본향지신위(本鄕之神位)’라는 비석을 세워 위패로 삼고 있다.
본향신의 이름은 ‘개로육서또’이다. 신풍리는 본래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와 같은 마을로서 천미촌(川尾村) 또는 냇기라 했다. 따라서, 당시는 본향당도 하나로서 신풍과 하천의 경계선에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행정구획이 세분되면서 이 마을이 두개로 갈려져 신풍리는 성산면에, 하천리는 표선면에 소속하게 되었는데, 그런 뒤에도 두 마을은 같은 본향당에서 당굿을 하면서 같은 본향신을 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 관에서 미신타파의 명목으로 당을 파괴하려 하자, 두 마을에서는 본향당을 하천리의 속칭 한다니소라는 곳으로 몰래 이전하고 제의를 지내오다가, 두 마을이 행정구역상 다른 면으로 되어 있어 공동제의를 지내는 데 불편한 점이 많으므로, 1950년대 초 신풍리가 당을 분리해서 현재의 위치에 새로 지은 것이다.
결국 개로육서또라는 수호신을 두개 마을에서 각각 모시고 있는 셈이다. 본풀이에 따르면 개로육서또는 구좌읍 송당신의 셋째아들인데, 어렸을 때 부모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므로 부모는 무쇠 함에 담아 바다에 띄워버렸다.
함은 동해 용왕국 산호수(珊瑚樹: 늘푸른종나무)가지에 걸리고 용왕의 막내딸에 의해 열려졌다. 함 속에는 천하맹장이 앉아 있으므로 용왕은 막내딸의 사위를 삼았다.
그런데 사위가 워낙 대식가여서 용왕국이 망할듯하므로 용왕은 사위와 딸을 다시 무쇠 함에 담아 띄워버렸다. 부부는 제주도에 표착(漂着)하여 부모를 뵌 뒤, 좌정할 곳을 찾아 내려왔다. 도중 부인은 목이 마르므로 골짜기에 괸 물을 먹었는데, 거기에 돼지털이 하나 떠 있었다.
그것으로 마치 돼지고기를 먹은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남편은 돼지고기를 먹어 부정하다 하여 내쫓아 시냇가에 좌정시키고, 다시 내려오다가 새금상 따님을 첩으로 삼아 신풍리로 내려와 좌정하였다. 이 때 오동지(吳同知) 며느리와 강동지 며느리가 물을 길러 가다가 이 신을 만나니, 신은 처음 만난 인간이니 너희들이 나를 위하라 하였다.
이래서 오씨·강씨가 상단골이 되어 당을 세우고 본향신으로 위하게 되었다. 현재 당굿은 예전과 다름없이 정월 초이튿날 과세문안제, 2월 13일 영등손맞이, 7월 13일 마불림제의 3대 제일로 행하고 있는데, 마을 각 호에서 주부들이 제물을 차려와서 성대히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