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천민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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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사건
1889년(고종 26)부터 1892년 봄까지 강원도 낭천현(현재 강원도 화천군)에서 발생한 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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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889년(고종 26)부터 1892년 봄까지 강원도 낭천현(현재 강원도 화천군)에서 발생한 민란.
내용

이 난은 호단위로 부과하는 요역인 호역(戶役)이 고르지 못함과 이서들의 환곡 부정 운영에 기인하였다.

민란의 첫 발생은 1889년이었는데, 이 때의 난은 감사(監司)가 소홀히 하여 제대로 수습되지 못한 상태로 계속되다가 1892년 봄에 인명의 살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피해자의 가족이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현감의 길을 막고 소요함으로써 조정에까지 알려졌다.

조정에서는 강원감사 윤영신(尹榮信)으로 하여금 조사, 보고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전전 현감 신용(申榕)과 전 현감 이석쇄(李奭鎖)를 의금부에서 그 죄를 다스리게 하고, 민원의 대상이던 정태영(程泰英)과 다년간 창색(倉色)으로 환곡을 부정한 장팔달(張八達)을 엄형한 뒤에 섬으로 유배하였다.

그리고 민중을 선동하여 인명을 살상한 기신영(奇莘永)과 이학신(李學信) 등은 효수하여 법의 엄함을 보였고, 현감의 길을 막고 소요한 최정선(崔正先) 등도 죄를 받았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일성록(日省錄)』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고종조(高宗朝)의 민란연구(民亂硏究)」(박광성, 『인천교육대학논문집』 14,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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