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산음장적 ( )

조선시대사
문헌
1606년과 1630년 경상도 산음현(현 산청군)에서 관내의 호구를 조사하여 면리별로 정리하여 엮은 관찬서. 호적대장.
이칭
이칭
산음장적(山陰帳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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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606년과 1630년 경상도 산음현(현 산청군)에서 관내의 호구를 조사하여 면리별로 정리하여 엮은 관찬서. 호적대장.
개설

『경상도 산음장적(慶尙道山陰帳籍)』은 1606년(선조 39)과 1630년(인조 8) 경상도 산음현에서 호구 파악을 위해 작성한 것으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호적대장이다.

편찬/발간 경위

조선왕조에서는 호구(戶口) 파악을 목적으로 매 3년마다 곧 자(子)·묘(卯)·오(午)·유(酉)로 끝나는 식년(式年)에 호적을 작성하였다. 매 식년 초 호적 업무를 총괄하는 한성부(漢城府)에서 호적 작성에 관한 관문(關文)과 사목(事目)을 마련하여 각 도를 거쳐 각 읍에 전달하면, 각 읍에서는 임시 기구인 호적소(戶籍所)를 설치하여 해당 직임을 선출하고 면리(面里)에 전령(傳令)을 보내 민간에 호적 작성을 알린다. 민간에서는 이에 따라 호별로 호구단자(戶口單子)를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호구단자는 일반적으로 2통을 제출하였는데, 관에서는 지난 식년의 호적과 대조하여 1통은 각 호로 돌려보내고, 1통은 해당 식년 호적 작성의 자료로 활용하였다. 이러한 조선왕조의 일반적인 호적 작성과 마찬가지로 『산음장적』도 병오년(선조 39, 1606)과 경오년(인조 8, 1630)에 작성된 것이다.

산음현은 1767년(영조 43)에 산청현(山淸縣)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896년(건양 원년)에는 단성현(丹城縣) 일부 지역을 편입하여 산청군으로 개편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지적 사항

이 호적대장은 필사본으로, 규격은 91×36.4㎝이다. 2책이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존되어 있다. 『산음장적』은 2책 모두 60~70장 정도인데, 보관상태가 좋지 않아 앞뒤의 여러 장은 파손이 심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장들도 구석과 가운데 접은 부분이 다소 파손되었다.

내용

『산음장적』은 파손된 부분이 많아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17세기 전반 당시 산음현 전 지역을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병오년(1606)의 장적에는 면별 표시가 없이 17개 동리의 호구가 기록되어 있고, 경오년(1630)의 장적에는 14개 동리가 각기 동·서·남·북 4개면으로 구분되어 있다.

『산음장적』의 호구 기록 내용은 17세기 중반 이후의 여타 지역의 장적과 다르지 않으나, 기재 양식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차이는 통호(統戶)의 기재나 구분 없이 리(里) 구분 아래 연이어 기재하면서, 단지 ‘호(戶)’ 자를 크게 써서 각각의 호를 구별하였을 뿐이다. 이 같은 차이는 1675년(숙종 원년)의 오가통사목(五家統事目) 반포로 5호를 1통으로 작통하여 통마다 통수(統首)를 두게 하였기 때문이다.

『산음장적』의 내용 가운데 특징적인 점은 1606년(선조 39)의 ‘현존 구수(現存口數)에 대한 연령분포도를 보면, 남녀 모두 중년층이 두꺼운 다이아몬드형을 나타낸다. 이것은 물론 현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장적이 모든 호와 구를 파악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산음장적』은 현존하는 호적대장의 최고의 장적이다. 그리고 후대의 호적대장과는 다른 여러 특징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호적 제도를 이해하거나 가족사, 혹은 사회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참고문헌

「조선후기 호적의 작성과정에 대한 분석」(권내현, 『대동문화연구』39,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1)
「조선후기의 인구파악 실상과 그 성격: 단성현 호적분석」(김건태, 『대동문화연구』39, 2001)
「조선왕조 호적의 기초적 연구」(한영국, 『한국사학』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5)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e-kyujangga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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