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대관(大觀), 호는 방곡(芳谷) 또는 남계(南溪). 아버지는 노세무(盧世茂)이며, 어머니는 밀양양씨(密陽楊氏)로 첨지 양허국(楊許國)의 딸이다. 강대수(姜大遂)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79년(숙종 5)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 이듬해 승문원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에 임명되었으나 곧 낙향하여 학문에 전심하였다. 1686년 성균관전적이 되었고, 그 뒤 사헌부감찰·공조좌랑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691년 창평현감으로 있을 때, 전세 수납 독려차 순천 등지를 순회하다 풍토병에 걸려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벼슬은 직강(直講)에 그쳤다.
지방 수령으로 있을 때는 청렴결백하고 구휼에도 힘써 백성과 관리들이 모두 존경하였다. 1694년 희빈 장씨가 왕비로 책봉되는 등 정국이 시끄러워지자, 미타산(彌陀山) 아래에 정자를 짓고 고금의 예학을 연구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저서로는 『방곡고(芳谷稿)』 1권이 『광주노씨세고(光州盧氏世稿)』 중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