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황해수사, 진용교위 등을 역임한 장수.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노인은 1592년 임진왜란 때 권율(權慄)을 따라 이치(梨峙)·행주·의령 등지의 전투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에는 남원성(南原城)이 함락되자 적정을 살피다가 적탄에 맞아 포로로 일본에 잡혀갔다.
3년간 억류되어 있던 중 마침 중국에서 차관(差官)으로 온 임진혁(林震虩)의 배편으로 동료 기효순(奇孝淳)과 함께 명나라로 탈출하였다. 그 뒤 무이서원(武夷書院)에서 정주학(程朱學)을 강론하다가 신종(神宗)으로부터 말 1필을 하사받고 1599년 귀국하였다.
1604년 진용교위(進勇校尉)로 있을 때 통사(統使) 이경준(李慶濬)과 함께 당포(唐浦)에 남아 있는 왜적을 격파해 선조로부터 「당포승전도(唐浦勝戰圖)」를 하사받기도 하였다.
금산의 금곡사(金谷祠)와 나주의 거평사(居平祠)에 배향되었다. 저술로는 일본에 억류되어 있을 때 지은 「피부동고록(被俘同苦錄)」·「거왜수록(居倭隨錄)」·「왜국지도(倭國地圖)」가 있으며, 저서로는 『금계집(錦溪集)』 6권 2책이 있다.
참고문헌
- 『고산집(鼓山集)』
- 『선조실록(宣祖實錄)』
- 『해동지(海東誌)』
-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
-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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