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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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황해수사, 진용교위 등을 역임한 장수.
이칭
  • 공식(公識)
  • 금계(錦溪)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함풍(咸豐)
  • 사망 연도1622년(광해군 1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황해수사|진용교위
  • 출생 연도1566년(명종 21)
  • 출생지전라남도 나주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원구 (도산서원,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노인 금계일기 미디어 정보

노인 금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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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황해수사, 진용교위 등을 역임한 장수.

개설

본관은 함풍(咸豐). 자는 공식(公識), 호는 금계(錦溪). 전라남도 나주 출신. 아버지는 증이조참의 노사증(魯師曾)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나항(羅恒)·김광운(金光運)·이이(李珥)의 문인이며, 이정구(李廷龜)·이덕형(李德馨)·강항(姜沆) 등과 교유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2년(선조 15) 진사시에 합격하고, 천거로 별제(別提)에 제수되었다. 1602년 무과에 급제, 선전관(宣傳官)을 비롯하여 수원부사(水原府使)를 거쳐 황해수사(黃海水使)에 제수되었는데, 얼마 후 정인홍(鄭仁弘)의 탄핵을 받아 군산(群山)으로 좌천되었다가 광해군이 즉위하자 병을 사칭하고 귀향하였다.

노인은 1592년 임진왜란 때 권율(權慄)을 따라 이치(梨峙)·행주·의령 등지의 전투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에는 남원성(南原城)이 함락되자 적정을 살피다가 적탄에 맞아 포로로 일본에 잡혀갔다.

3년간 억류되어 있던 중 마침 중국에서 차관(差官)으로 온 임진혁(林震虩)의 배편으로 동료 기효순(奇孝淳)과 함께 명나라로 탈출하였다. 그 뒤 무이서원(武夷書院)에서 정주학(程朱學)을 강론하다가 신종(神宗)으로부터 말 1필을 하사받고 1599년 귀국하였다.

1604년 진용교위(進勇校尉)로 있을 때 통사(統使) 이경준(李慶濬)과 함께 당포(唐浦)에 남아 있는 왜적을 격파해 선조로부터 「당포승전도(唐浦勝戰圖)」를 하사받기도 하였다.

금산의 금곡사(金谷祠)와 나주의 거평사(居平祠)에 배향되었다. 저술로는 일본에 억류되어 있을 때 지은 「피부동고록(被俘同苦錄)」·「거왜수록(居倭隨錄)」·「왜국지도(倭國地圖)」가 있으며, 저서로는 『금계집(錦溪集)』 6권 2책이 있다.

참고문헌

  • - 『고산집(鼓山集)』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해동지(海東誌)』

  • -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

  • -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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