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점. 1992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녹동서원은 원래 존양사(存養祠)라는 이름으로 1630년(인조 8) 창건되어 1731년(숙종 39) 사액(賜額:임금이 사원 등에 이름을 지어 편액을 내림)되었다.
처음에는 연촌 최덕지(崔德之)만 배향하다가 1665년(현종 7) 최덕지의 손자 산당 최충성(崔忠成), 1659년(숙종 21) 문곡 김수항(金壽恒), 1711년 김수항의 아들 김창협(金昌恊)을 추배하였다.
원생 명부(名簿)인 유안(儒案)은 『서원청금안(書院靑衿案)』(1690∼1844) 25책, 『서원서재유안』 2책, 『합경재청금안』 3책(1807 · 1822 · 1844) 등이다. 가장 오래된 유안은 1690년으로 수록 인원은 140여 명이고 전주 최씨 · 거창 신씨 · 함양 박씨 순이다.
『심원록(尋源錄)』 5책(1723∼1811), 『합경재보노안(合敬齋保奴案)』 3책(1822 · 1823 · 1840) 등 성책문서는 38책이다.
1659년 존양녹동서원 영선물자 수집 통문(通文) 1매, 1701년 청액시의 경비와 노비 방매(放賣)의 내용이 기록된 완의(完議) 1매, 1716년(숙종 42) 영당에 노비를 기증한 내용의 명문(明文) 1매, 1719년 노비기증 완의 1매, 1803년 면역(免役) 조처를 내린 예조완의 1매, 1861년 면역을 청하는 상서(上書), 1868년 서원훼철시의 순영감결(巡營甘結) 1매이다.
목판은 처음에 최덕지의 『연촌유고(烟村遺稿)』, 김수항의 『문곡집(文谷集)』, 최충성의 『산당집(山堂集)』, 임억령(林億齡)의 『석천집(石川集)』, 강항(姜沆)의 『강감회요(綱鑑會要)』 등이 있었다.
지정 목판은 현전하는 『연촌유고』 등 관련 목판 53매, 『문곡집』 400매, 『산당집』 55매 등 508매이다. 원래 녹동서원(영암군 영압읍 교동리)에 있었으나 1868년 훼철(부수어 치워버리는 것) 이후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의 합경당과 목판각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시대 후기 서원의 연혁, 조직과 운영, 유생 명단, 경제 기반, 사회적인 위상, 제향인물사 관련자료와 그들의 목판까지 소장하고 있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