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경주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며,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외함(外函)과 함께 발견되었다. 유골을 넣어 매장하는 데에 사용되던 항아리로서, 낮은 온도에서 발색하는 연유(鉛釉)계통의 녹유를 발라 구워낸 것이다.
형태는 원형의 합(盒)으로 몸체의 구연(口緣)은 안쪽으로 단(段)을 이루어 뚜껑을 얹을 수 있도록 하였고, 뚜껑의 구연 안쪽에는 수평의 턱을 만들어 몸체의 턱에 걸리도록 하였다. 문양은 그릇 전면에 걸쳐 빽빽하게 인화문을 시문하였는데, 비교적 다양한 장식의장을 보여주고 있다.
뚜껑의 중심에는 네 잎으로 된 서화문(瑞花文)을 두고, 그 주위에 두 줄의 영락문(瓔珞文)을 압인(押印)하였으며, 몸체에는 역시 영락문을 두고 그 상하에 화판문(花瓣文)과 승렴문(繩簾文)을 배치하였다. 이러한 문양은 통일신라의 인화문토기(印花文土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시문공간을 횡으로 분할하는 문양 구성 역시 고신라 이래의 전통을 이은 신라토기 문양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뚜껑과 몸체의 안팎 전면에 약간 황색을 띤 녹유가 시유되었으며, 그 발색이 매우 아름답다.
이 골호가 들어 있던 석제 외함도 합형으로서 기면을 일정한 폭으로 깎아내고 다듬어 연꽃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녹유골호 못지 않은 우수한 솜씨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