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 철사 포도문 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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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
공예
유물
국가유산
조선 후기의 백자항아리.
이칭
이칭
이조백자철사포도문호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白磁 鐵畵葡萄文 壺)
분류
유물/생활공예/토도자공예/백자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국보(1962년 12월 20일 지정)
소재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 박물관 (신촌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 후기의 백자항아리.
내용

높이 53.3㎝, 입지름 19.4㎝, 밑지름 18.6㎝, 배지름 43.3㎝.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입부분은 알맞은 높이로 올라와 있고 입에서 어깨부분까지는 둥글게 팽창되어 있어 대담하고 당당한 느낌을 준다.

유조(釉調)는 빙렬이 거의 없이 담청(淡靑)을 띤 청백색으로 형태 · 무늬 등과 함께 이 항아리의 완정(完整)한 품격을 최대한 살려주고 있다. 무늬로는 항아리 윗부분의 앞뒤에 철사(鐵砂)안료를 써서 포도송이가 달린 포도덩굴을 그렸는데, 구성과 포치가 매우 세심하여 기품 있게 그려진 한폭의 정제된 포도화(葡萄畫)를 보는 듯하다.

특히, 포도그림 자체에서 보여주는 사실성과 철사안료를 사용하여 농담과 강약을 적절히 구사한 고도의 회화적 표현이 매우 돋보인다. 조선시대에는 관수용(官需用) 및 어용(御用)의 기물을 관요(官窯)에서 제작하였다.

이와 같은 기물을 관리하던 사옹원(司饔院)에서는 매년 감조관(監造官)을 임명하여 화원들을 거느리고 사옹원의 분원(分院)이 있던 경기도 광주에 가서 자기에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이러한 예들은 우수한 회화적 의장을 가진 항아리 · 병 등에서 볼 수 있으며, 이 백자철화포도문 항아리 역시 그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참고문헌

『한국도자사(韓國陶磁史)』(강경숙, 일지사, 1989)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특별전(梨花女子大學校博物館特別展)』 14 -조선백자항아리-(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1985)
『국보(國寶)』 -백자(白磁)·분청사기(粉靑沙器)-(정양모 편, 예경산업사, 1984)
『한국(韓國)의 미(美)』 -백자(白磁)-(정양모 감수, 중앙일보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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