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16.8㎝, 입지름 6.1㎝, 밑지름 8.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높이 솟은 아가리 부분은 약간 안으로 기울었으며 어깨는 넓게 벌어졌고 잘록하게 좁아진 허리는 다시 외반되면서 굽에 이른다. 굽의 바깥 테두리 부분은 사면으로 비스듬히 깎였다.
뚜껑은 낮은 반원형으로 테두리가 밖으로 벌어졌으며 윗부분 중앙에 연꽃 봉오리 모양의 꼭지가 달렸다. 뚜껑의 밑에는 길쭉한 원통형의 촉이 달려있으며 이러한 특징은 같은 시기의 다른 백자 뚜껑에서 볼 수 있다. 문양은 뚜껑의 꼭지에 꽃잎 넷을 표현하였고 그 주위에 매화와 대나무를 그렸는데 조선 전기 회화에서 보이는 수지법(樹枝法)과 비슷하다.
항아리의 아가리에는 꼬불꼬불하게 이어진 변형된 당초절지문(唐草折枝文)이 네 곳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몸체의 한 면에는 한 쌍의 새가 앉아 있는 매화와 들국화를, 다른 한 면에는 V자형으로 뻗어나간 대나무를 그려 넣었는데, 능숙하게 구사된 몰골화법(沒骨畵法: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먹이나 물감을 찍어서 한 붓에 그리는 화법)으로 처리되었다. 두 마리의 새와 매화가지 일부는 거의 흑색에 가까운 청화발색을 보여준다.
문양의 구도와 표현이 세련되고 청화안료 사용에 농담의 변화를 준 필력은 전문 화원(畵員)의 것으로 생각되는 우수한 솜씨이다. 특히 주목되는 문양은 매화가지 아래에 피어 있는 들국화로서, 이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경에 크게 유행하던 초화문의 이른 형태로 보인다.
백자호의 유약은 옅은 청색이 감도는 백색이며, 고운 모래를 받쳐 번조했다. 이러한 특징은 조선 전기에 운영된 경기도 광주 도마리 1호 가마터의 백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항아리의 유조(釉調)에 담갈색이 약간 감도는 것은 환원번조(還元燔造)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항아리는 조선 초기 백자항아리의 형태와 관요(官窯)에서 만든 청화백자의 문양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