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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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문신·실학자 서유구 등이 정조의 명으로 전국에 소장된 책판을 조사한 목록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윤식 (동덕여자대학교, 서지학)
  • 최종수정 2024년 08월 21일
누판고 중 권수면 미디어 정보

누판고 중 권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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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문신·실학자 서유구 등이 정조의 명으로 전국에 소장된 책판을 조사한 목록집.

서지적 사항

7권 3책. 필사본.

내용

1778년(정조 2) 정조는 각 도의 공사(公私)에서 간행된 책판을 기록하여 올리라는 유시(諭示)를 내려 중앙관서와 8도의 관아를 비롯해 서원 · 사찰 · 사가(私家)에서 올린 판본을 규장각으로 하여금 그 존일의 여부를 조사하고 주제별로 분문조례(分門條例)하게 하여 1796년에 완성하였다.

편성체재는 먼저 어찬(御撰) · 어정(御定)의 2문(門)을 별치하여 왕의 친저서(親著書)와 명찬서(命撰書)를 열거한 다음, 사부분류법(四部分類法)을 택하여 분류하였는데, 각 부별로 세분된 유문과 수록된 판본 수는 다음과 같다.

경부(經部) 8류(類) 2속(屬)에 47부, 사부(史部) 5류 5속에 74부, 자부(子部) 11류 4속에 119부, 집부(集部) 3류에 304부를 수록, 앞에 수록된 어찬 및 어정서 66부를 포함하여 총 610부로 되어 있다.

각 판본에 대한 기입은 서명을 표출하고 그 아래에 권수 표시를 하였으며, 다음 행부터는 편저자명과 그의 약전, 부분적으로 서(序) · 발문 및 내용소개, 판의 소장처와 완결(刓缺 : 글자가 닳아 없어짐.) 여부, 인지수(印紙數) 등을 포함한 간결한 해제를 달고 있다.

그러므로 『누판고』는 정조조 전후에 전국에서 판각된 책판에 대한 서지자료로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될 뿐 아니라, 당대의 출판문화 사정과 우리나라 분류학사 연구상 귀중한 자료가 된다.

편자에 대하여는 전사본 범례에 각신 등에게 명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뿐 밝히고 있지 않으나, 교정본과 『증보문헌비고』 예문고(藝文考), 『군서표기(群書標記)』 등에서 서유구로 밝히고 있음을 참고한 것이다.

또한, 편자를 실학에 바탕을 둔 농정학자(農政學者)로 평가받게 한 그의 저서 『임원경제지』에도 『누판고』의 초고본으로 보이는 경외누판(京外鏤板)이 실려 있으므로 참고가 된다. 『누판고』의 원본은 전하지 않으나 전사본이 규장각도서와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1941년 홍명희(洪命熹)가 교정하여 활인(活印)한 것과 그 뒤 영인한 것이 있다.

참고문헌

  • - 『군서표기(群書標記)』

  • - 『증보문헌비고』

  • - 『임원경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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