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노산군지신(魯山君之神)’이라고도 한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있는 영모전(永慕殿) 서낭당을 비롯하여 능동 서낭당, 상동면 녹전리·구래리, 하동면 내리·어평리 등과 정선군 여량리 및 태백산일대의 서낭당에서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영모전은 원래 신목(神木) 하나만 서 있던 서낭당이었으나 현재는 단청을 한 기와집에 단종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있다. 영월읍보덕사(報德寺) 등의 절에서도 단종 영정을 모시고 있는데, 그림에는 백마를 탄 단종과 그 앞에 머루바구니를 들고 있는 추충신(秋忠臣)이 같이 그려져 있으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온다.
추충신의 이름은 익한(益漢)으로 한성부윤을 지냈던 사람이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어 외롭게 관풍헌(觀風軒)에 있을 때 산머루를 따다가 진상하고 자주 문안을 드렸다.
그날도 예외 없이 산머루를 따 가지고 단종에게 진상하려고 영월부중으로 내려오는 길인데, 연하리(蓮下里) 계사폭포에 이르렀을 때, 곤룡포에 익선관(翼蟬冠)으로 정장을 하고 백마를 타고 유유히 태백산 쪽으로 향하여 가는 단종을 만나게 되었다.
추익한이 단종에게 “대왕마마, 어디로 행차하시나이까?” 하니, “내가 태백산으로 가는 길이오.”라고 말한 뒤 홀연히 단종은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자기 눈을 의심하면서 급히 부중에 들어와 단종의 거소에 가보니 단종은 이미 변을 당한 뒤였다.
추익한은 다시 단종을 만났던 계사동까지 와서 단종을 따라 죽었다. 이후 추익한도 단종과 함께 태백산신령이 되었다. 또한, 신령이 된 충신이 있었는데, 그는 충의공(忠毅公) 엄흥도(嚴興道)이다.
단종이 변사하였을 때 세조가 두려워 누구 하나 돌보지 않자 당시 호장(戶長)이었던 그는 즉시 서강(西江)과 동강이 합류하는 곳으로 달려가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미리 준비한 관에 봉안하여 영월군 서북쪽 동을지산(冬乙旨山 : 莊陵)에 암장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흥미로운 점은 태백산일대의 서낭당 뒤에는 가시가 있는 엄나무가 서낭목으로 서 있는 곳이 많다. 엄충신은 죽어서까지 단종을 보필하기 위하여 그 충절의 넋이 사후에 엄나무가 되어 단종이 계신 서낭당을 지키고 있다고 믿고 있다. 정선군 여량리에도 노산군을 모신 서낭당이 있다.
청령포(淸泠浦)에 유배된 단종이 심심하여 연에 글을 써서 띄웠는데 그것이 바로 여량리에 있는 느티나무에 걸렸다. 연을 내려보니 단종의 친필이 있는지라, 그 걸린 나무를 단종의 신체로 신격화하여 서낭당을 지었다. 그러나 모시고 난 그 뒤부터 여량리 일대에 괴질이 퍼져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러던 중 한 도사가 지나가다가 “이 마을은 저 서낭 때문에 화를 당하는 것이다. 노산군으로 강등시킨 것을 단종으로 모셨기 때문에 그 죄로 괴질이 퍼진 것이니, 도로 노산군지신으로 제사를 지내면 동네가 편안할 것이다.” 라고 충고하여 그 말을 좇으니 동네가 무사태평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