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 상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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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평안남도 대동군 용악면에 있는 철기시대 청동기류·철제무기류 등이 출토된 무덤.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 고고학)
  • 최종수정 2024년 02월 16일
평안남도 대동군 상리 철도용지 고분 발굴 조사 광경 미디어 정보

평안남도 대동군 상리 철도용지 고분 발굴 조사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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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평안남도 대동군 용악면에 있는 철기시대 청동기류·철제무기류 등이 출토된 무덤.

개설

1932년 만포선(滿浦線) 철로공사 때 토사(土砂)를 채굴하던 중 유물들이 발견되어 알려졌으며, 발견 직후 일본학자 가야모토(榧本杜人)에 의해 조사되었다. 유적은 평양의 동북방 약 20㎞ 떨어진 상리의 북쪽 구릉 기슭에 위치한다.

내용

첫 번째의 유물 발견 당시에는 표면에 성토(盛土) 등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깎인 표토 아래 약 25㎝ 내외의 깊이에서 철갈래창[鐵戟] · 철투겁창[鐵鉾] 등이 먼저 발견되었다. 확장하여 동서 약 2m, 남북 1.5m 내의 범위에서 수레부속품[車輿具]을 비롯한 일괄유물이 발견되었다.

두 번째 조사에서는 첫 번째 발견장소에서 남북으로 확장했으나 별다른 변화가 없었고, 동쪽으로 50㎝ 정도 굴진(掘進)한 장소에서 철도끼[鐵斧] 2점이 발견됐을 뿐이다. 첫 번째와 같이 얇은 흑색층이 확인되었다.

세 번째 조사에서도 주위를 확장하였으나 구조시설은 발견되지 않았고, 1·2차 때와 똑같이 유기물질이 썩어 형성된 흑색층 위만 확인했을 뿐이다. 이 흑색층은 3∼4m 구역 내의 표토 아래 0.9∼1.2, 1.3m 내외의 깊이에 있었다고 한다. 상기한 내용 외는 발굴상황에 대해서 밝혀진 것이 없다.

출토유물

출토유물로는 세형동검(細形銅劍)을 비롯한 청동기류와 철검을 비롯한 철제 무기류, 토기류 등 22점이 있으며, 상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청동기류다.

① 동검 1개 : 이른바 제Ⅱ식에 속하는 세형동검으로, 끝부분[鋒部]의 길이가 상당히 길다.

② 동제 칼자루끝장식[銅製劍把頭飾] 1개 : 평면이 十자형을 이룬 형식으로, 주축에는 양편에 계단형으로 융기를 만들었다.

③ 동종방울[銅鐸] 3개 : 제작 때 주형(鑄型)을 연결한 구멍이 남아 있으며, 3개 중 하나는 상부의 반원형 고리로부터 쇠줄을 사용해 혀[舌]를 매단 흔적이 보이며, 따로 철제혀[鐵舌]가 1개 반출되었다. 상부의 고리는 좁아진 후기양식과는 달리 상부 전체에 걸쳐 있다.

④ 동제 허리띠고리[銅製帶鉤] 조각 1개 : 갈고리가 있는 쪽 절반이 부러져나간 것으로, 몸체는 휘었고 뒷면에 원형의 꼭지가 있다. 전체적으로 용머리와 같은 동물머리 형상의 것으로 생각된다. 한(漢)나라계통의 유적에서 출토되는 것과 같은 형식이다.

⑤ 동제 고삐고리[銅製車衡頭] 2개 : 수레멍에 양끝에 장치되는 권총형의 금구(金具)이다. 사용으로 인해 구멍이 많이 닳았다. 속은 비었는데 삽입되었던 나무자루의 일부가 남아 있다.

⑥ 삿갓형동기[笠形銅器] 2개 : 원통형의 자루부분에 마디가 있는 형식으로, 한 쪽 부분이 삿갓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 내부에서도 두 쪽을 붙여 만든 나무자루가 잔존하였다.

⑦ 을자형동기(乙字形銅器) 1쌍 : 乙자형의 속이 빈 대롱[管]으로 된 금구 2개와 직선형으로 된 것 2개로 되어 있다. 고삐고리 · 삿갓형동기와 함께 모두 수레부속품이다. 또한 속에 나무자루가 삽입되어 있다.

다음으로는 철제무기류이다.

① 철제 재갈 및 재갈멈추개 2개분 : 타원형으로 생긴 날개를 S자형으로 연결시킨 재갈멈추개와 원형의 고리로 연결된 2매씩의 재갈[銜]이다. 부식이 심해 형태가 확실하지 않다. 경상북도 대구지방에서는 같은 형태의 청동제 · 철제가 함께 출토된 바 있다.

② 철검(鐵劍) 2개 : 장검(長劍)으로 2개가 모두 단조품(鍛造品)이며, 칼몸[劍身]의 등날[鎬線, 刀背稜]은 희미하다. 꼬투리[莖部]는 긴 장방형으로, 실을 감은 흔적이 있고 하단에는 구멍을 뚫었다.

③ 철투겁창 2개 : 몸체의 단면이 편육각형(偏六角形)을 이뤘고, 그 아래에 계속된 부분은 단면이 네모나게 생겼다. 자루를 끼게 된 부분은 원통형이며 측면에 작은 구멍을 뚫었다. 내부에는 대나무를 가늘게 쪼갠 것을 묶어서 만든 자루가 꽂혀 있던 자국이 남아 있다. 2점 모두 단조품이다.

④ 철갈래창[鐵戟] 1개 : 투겁창[鉾]과 꺾창[戈]을 직각으로 결합시킨 형태로, 몸부분[身部]은 모두 단면 편육각형이며, 투겁창의 부분에 연접된 꺾창의 부분은 단면이 장방형을 이룬다. 자루에 꽂게 된 부분의 단면은 편삼각형(偏三角形)이다. 한대(漢代) 유적에서 출토되는 것과 같은 형태로 단조품이다.

⑤ 철제 도끼[鐵斧] 2개 : 소켓[銎]이 있는 형식의 도끼로 단조품이다. 날 쪽이 좀 넓어진 것이다.

끝으로 토기류는 회색의 와질계(瓦質系) 단지와 민무늬토기계의 화분형 토기(花盆形土器)이다. 와질계 단지는 물레[陶車]를 사용한 것이며, 화분형토기는 활석(滑石)이 많이 섞인 바탕흙[胎土]의 것으로, 아가리[口緣部]쪽만 물레로 처리하였다. 항상 한식계(漢式系) 유물과 함께 나오고 이 두 토기형식도 세트로 발견된다.

이 유적은 목질(木質)이 부식된 흑색층으로 미뤄볼 때, 소규모의 목곽분(木槨墳)으로 추정되며, 유물출토상태로 보아 덧널[槨] 외 껴묻거리 된 유물도 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성격의 분묘 유적과 유물은 낙랑지역을 중심으로 한 평안도와 황해도지역에만 한정되어 분포, 출토되고 있어, 낙랑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세형동검 같은 우리나라 특유의 유물이 한식유물(漢式遺物)과 함께 출토되는 것은 당시 고조선의 토착세력들이 낙랑 통치 하에 흡수되어 간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이 유적과 같은 성격의 유적인 부조장묘(夫租長墓)와 부조예군묘(夫租薉君墓)에서 출토된 낙랑의 현명(縣名)이 새겨진 도장으로 보아 확실하다.

의의와 평가

이 유적의 연대는 부조예군묘 출토의 일산(日傘) 살대에 새겨진 “永始三年(영시3년)……”이라는 명문(銘文)으로 보아, 서기전 14년 전후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 「청동기(靑銅器)」(윤무병, 『한국사』 1, 국사편찬위원회, 1977)

  • - 「平南大同郡龍岳面上里遺蹟調査報告」(榧本龜次郎, 『朝鮮總督府博物館報』6,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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