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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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시대 관리들의 관계(官階) 중 특히 문산계(文散階)에 붙여 부르던 명칭.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익주 (서울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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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조선시대 관리들의 관계(官階) 중 특히 문산계(文散階)에 붙여 부르던 명칭.

개설

본래 중국의 하·은·주 3대(三代)에서 공(公)·경(卿)의 아래, 사(士)의 위에 있는 관리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수(隋)·당(唐) 이후부터는 문산관(文散官)의 명칭으로 쓰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광종 때 당제(唐制)를 모방한 문산계가 마련됨에 따라 처음으로 쓰이기 시작하였다.

내용

성종과 문종 때 문산계가 정비되어가면서 종5품 이상의 품계에 사용되어 대부계(大夫階)로서 정6품 이하의 낭계(郎階)와 구분되었다.

그 뒤, 1308년(충선왕 복위년) 5품이 낭계에 포함됨으로써 종4품 이상의 품계에 사용되었다. 이러한 원칙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또한 문산계에서 일정 관품 이상에만 쓰이는데서 비롯되어, 그 관품에 해당하는 관리들을 범칭하는 말로 전의되어 사용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고려에서는 재추(宰樞) 아래 5품 이상(뒤에는 4품 이상)의 관리를, 조선에서는 당상관(堂上官) 아래 4품 이상의 관리를 각각 가리켰다.

한편, 고려시대는 관직명으로도 사용되었다. 그 예로는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간의대부(諫議大夫), 어사대(御史臺)의 어사대부, 동궁관(東宮官)의 태자찬선대부(太子贊善大夫) 등이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는 관직명으로 사용된 예는 없다. 다만, 1894년 갑오개혁 당시 궁내부(宮內府)의 왕태후궁(王太后宮)과 왕태자비궁에 각각 대부가 설치된 적이 있었다.

이 밖에 박지원(朴趾源)의 「양반전」에는 “책을 읽으면 사(士)라 하고, 정치에 나아가면 대부가 된다.” 라고 하여 사, 즉 학자에 대비시켜 모든 관리들을 지칭하는 대부의 용례가 보인다. →문산계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경국대전(經國大典)』

  • - 『연암집(燕巖集)』

  • - 『조선초기(朝鮮初期) 양반연구(兩班硏究)』(이성무, 일조각, 1980)

  • - 「고려시대(高麗時代)의 문산계(文散階)」(박용운, 『진단학보(震檀學報)』 52,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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