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도(西海道)의 세미(稅米)를 운반, 저장하였다가 서경관(西京官)들의 녹봉을 지급하였다. 1088년(선종 5) 이미 그 존재가 확인되므로, 아마도 녹봉제가 정비되는 문종 때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178년(명종 8) 서경 관제를 고쳐 정할 때 대관(大官)·양온(良醞)·염점(鹽店)·영선점(迎仙店)·함화점(咸和店) 등과 함께 창조(倉曹)에 속하였다. 8개의 지고(地庫)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1225년(고종 12) 화재에 대비하여 20여만 곡(斛)을 저장할 수 있는 지창(地倉)이 신축되기도 하였다.
대창어사(大倉御史)의 존재가 확인되나, 구체적인 관직은 밝혀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대창서(大倉署)와의 관계도 분명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