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사 ()

목차
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 보문각 · 예문관 · 문덕전 · 연영전에 소속된 관직.
목차
정의
고려시대 보문각 · 예문관 · 문덕전 · 연영전에 소속된 관직.
내용

보문각에는 1인을 두었다. 그 뒤 충숙왕 원년에 심왕(瀋王)의 건의로 대제학(종2품)을 두었는데, 이 관직이 공민왕 5년에 대학사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1362년(공민왕 11)에 다시 대제학으로 바뀌는 등 명칭에 잦은 변화가 있었다.

한편 1325년(충숙왕 12)에 예문춘추관을 나누어 2관으로 하고 예문관에 수찬 주부 각 1인과 검열 2인을 두었다가, 1360년(공민왕 9)에 대학사 2인을 더 두었다. 1362년에 다시 예문관이라 칭하면서 대학사를 고쳐 대제학으로 바꾸면서 품계를 종2품으로 하였다.

한편 995년(성종 14)에 숭문관(崇文館)을 홍문관(弘文館)이라 하여 학사를 두었다. 문종이 관제를 정하여 대학사의 품계를 종2품으로 하고 학사는 정4품으로 하였다. 1116년(예종 11)에 본품행두(本品行頭)로 삼았다.

문덕전은 1136년(인종 14)에 수문전(修文殿)으로 바뀌었는데, 관직으로 대학사와 학사를 두었다. 그리고 1136년(인종 14)에 연영전(延英殿)을 집현전(集賢殿)으로 바뀌었는데, 관직으로 대학사·학사를 두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