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백현(長白縣) 16도구(道溝)를 중심으로 1921년 1월부터 만주지역에 산재한 독립운동단체의 연합체를 구성하고자 하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즉, 군비단(軍備團)·태극단·광복단·대진단지부(大震團支部)·흥업단지부(興業團支部)의 대표 50여 명이 덕수 서곡리에 있는 대진단지부 사무소에서 회합하여, 압록강연안 각 단체의 연락통일과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목적으로 하는 전문 10조의 연합규약을 제정하고, 연합회의 임원단을 선임하였다.
이것이 모체가 되어 10월 흥업단 단장 김호[(金虎), 이칭: 김호익(金虎翼)]를 회장으로 하는 대한국민단이 결성되었다. 구성은 회장 김호, 부회장 이은경(李殷卿), 총무 윤병용(尹秉庸), 비서 김용대(金容大), 의사부장 윤세복(尹世復), 재무부장 강연상(姜鍊翔), 서무부장 석주(石柱), 군사부장 김찬(金燦), 경호부장 한창언(韓昌彦) 등이었다.
조직은 경호부에 경비원 수십명을 배치하여 경비 및 경호를 시키고, 군사부 밑에 군대를 설치하고 군대편성을 계획하였으며, 이어서 안도(安圖)·임강(臨江)·장백현에 동지단·서지단·남지단을 설치하였다.
한편, 독립대장 이영식(李永植)과 협상하여 그 조직을 흡수, 혼성의용군을 편성하여 국내진입작전을 수행하였고, 농민회를 조직하여 군자금과 군수품의 제공·운반 및 모군활동의 확대를 꾀하였다.
이로써 이 단체는 일정한 지역 내에서 가능한 한 통일노선을 구축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보다 대규모의 민족단일노선구축의 면에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