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에서 항일투쟁을 하던 김학섭(金學燮)·김병관(金秉官)·강석훈(姜錫勳) 등이 청산리대첩 이후 만주지역에서의 군사행동이 어렵게 되자, 1920년 12월 노령의 시지미 강용관(姜龍官) 집에서 이 단체를 조직하였다.
대장 김학섭, 대원 문창학(文昌學)·김병관·강석훈·최시능(崔時能)·최영걸(崔英傑) 등이 모여 국내로 진입하여 조선총독부와 투쟁할 것을 결의하였다. 김병관이 무기 입수의 책임자가 되어 노령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하였다.
이를 대원들이 소지하여 1921년 1월 함경북도 웅기군 신건동(新乾洞)의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경찰 1명(松崎)을 사살하고, 주재소 숙사를 파괴하였으나 일본경찰의 총공격을 받아 최영걸이 전사하였다.
그 뒤 근거지를 혼춘(琿春)에 두고 한민회(韓民會) 등의 독립운동단체와 연락하면서 일본경찰관서 습격과 친일 앞잡이의 숙청에 주력하였다. 같은 해 12월 일제 앞잡이의 밀고로 김학섭·문창학·최시능 등이 혼춘 일본영사관 경찰에 붙잡힘으로써 이 단체는 한민회에 병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