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개설
기능과 역할
이러한 상황이 상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고되자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같은 해 10월 23일 대한정의군정사로 개칭하게 하고 그 기구를 정비하였다.
총재 및 부총재 밑에 사령관·경리부 및 비서과·회계과·서무과·외교과·편집과·통신과를 두었으며, 다시 사령관 밑에는 검사과·심판과·교련과·기기과를 설치하였고, 경리부 밑에는 출납과·모연과(募捐課)를 두고 있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조직이 상당히 세밀하고 큰 규모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해 12월 현재 주요부서의 간부는 총재 이규, 부총재 강희, 사령관 이동주, 비서과장 홍우찬(洪祐贊), 서무과장 강두희(康斗熙), 외교과장 길성익(吉星翼), 편집과장 윤석우(尹錫禹), 검사과장 김정식(金鼎植), 심판과장 연병준(延秉俊), 교련과장 조동식 등이었다.
사령관 예하의 4개부를 설치했는데, 참모부장 이동주, 군무부장 강익성(姜翼成), 경위부장 김병순(金炳淳)·경리부장 강이중(姜以中)이 각각 관장하였다.
의의와 평가
또, 신문과 잡지를 발간해 교육과 민족정신을 계몽하였다. 1920년부터는 교련과장이었던 조동식의 전술이 그 위세를 전 만주에 떨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20년 8월 일본군의 협공작전으로 영안현(寧安縣)으로 퇴각하였다. 결국, 그해 12월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대표 서일(徐一), 대한독립군 대표 홍범도(洪範圖), 대한국민회 대표 구춘선(具春先), 대한신민회 대표 김성배(金聖培), 광복단 대표 이범윤(李範允) 등이 밀산(密山)에 모여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할 때 흡수되었다. →대한독립군단
참고문헌
- 『한국공산주의운동사(韓國共産主義運動史)』 4(김준엽·김창순, 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74)
- 『독립운동사』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 3(국사편찬위원회, 1967)
-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애국동지원호회, 1956)
- 『무장독립운동비사(武裝獨立運動秘史)』(채근식, 대한민국공보처, 1949)
- 『朝鮮民族運動年鑑』(在上海日本領事館警察部 第二課 編, 東文社書店,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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