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시대, 13조창 중 지금의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창.
제정 목적
내용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고려 정종(靖宗) 때(재위 1034~1046) 전국 각 조창에 배치할 조운선(漕運船)의 숫자를 정하면서, 덕흥창에는 1척당 200석의 곡식을 실을 수 있는 평저선(平底船) 20척을 두었다고 한다. 덕흥창의 수세(收稅) 구역은 충주와 그 관할 지역, 경주와 상주, 안동, 그리고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의 관할 지역 등이었다. 덕흥창에 모인 세곡은 한강을 따라 개경의 경창(京倉)으로 운송되었다. 고려시대의 조창은 단순히 창고 건물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 지역까지 포함하는 일종의 행정 구역이었다. 조창에는 세곡의 운송과 보관을 감독하는 판관(判官)이 임명되었으며, 실무 행정을 담당하는 색리(色吏), 세곡의 보관과 운송을 담당하는 사공(沙工), 격군(格軍) 등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고려 인종(仁宗) 때 개정된 외관(外官)의 녹봉 규정에 따르면, 13창의 판관에게는 20석의 녹봉이 지급되었다.
변천사항
『태종실록(太宗實錄)』이나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덕흥창이 덕은창(德恩倉)이라는 명칭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1465년(세조 11) 충주 가흥역 동쪽 2리 지점에 가흥창(可興倉)을 신설하고 덕흥창과 경원창의 기능을 가흥창으로 이전하였다. 덕흥창과 경원창은 이때 모두 폐지되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단행본
-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사: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14(탐구당, 1993)
-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사: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24(탐구당, 1994)
-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사: 조선 후기의 경제』 33(탐구당, 1997)
- 최일성, 『충주의 역사와 문화』(백산자료원, 2010)
- 한정훈, 『고려시대 교통운수사 연구』(혜안, 2013)
- 문경호, 『고려시대 조운 제도 연구』(혜안, 2014)
논문
- 문경호, 「여말 선초 조운 제도의 연속과 변화」(『지방사와 지방문화』 17-1, 역사문화학회, 2014)
- 정요근, 「고려~조선 전기 조창의 분포와 입지」(『한국사학보』 57, 고려사학회, 2014)
- 조길환, 「충주 금천창 연구」(『문화재』 41-1,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 한정훈, 「조선 건국기 조운 체제의 정비와 그 의미」(『진단학보』 120, 진단학회, 201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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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물건을 실어 나르는 데 쓰는 배.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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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밑바닥이 평평한 배. 물이 얕은 데로 다니는 데 좋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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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고려ㆍ조선 시대에, 세곡(稅穀)의 수송과 보관을 위하여 강가나 바닷가에 지어 놓은 곳집. 조선 시대에는 경창(京倉), 가흥창(可興倉) 등 전국에 열 곳이 있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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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배로 물건을 실어 나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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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나라에 조세로 바치는 곡식.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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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조선 시대에, 사공(沙工)의 일을 돕던 수부(水夫).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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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군아(郡衙)가 있던 곳.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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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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