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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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 상서도성(尙書都省)의 종7품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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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상서도성(尙書都省)의 종7품 관직.
내용

정원은 2인이었다. 문종 때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1275년(충렬왕 1) 상서성이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에 병합되어 첨의부(僉議府)로 되면서 다른 상서성 관속들과 함께 혁파되었다. 1298년 충선왕에 의해 첨의부의 관직으로 잠시 둔 적이 있으나 곧 혁파되었다.

1331년(충혜왕 1)에는 삼사(三司) 안에 두었다. 1356년(공민왕 5) 삼사가 폐지되고 대신 상서성이 부활됨에 따라 상서성의 관직으로 환원되었다. 1362년 다시 상서성이 삼사로 대치되자 삼사에 소속되었으며, 아울러 정7품 관직으로 승격되었다.

한편, 충선왕 때는 수령관(首領官)으로서 경력(經歷)과 함께 설치되었다가 곧 혁파된 적이 있다. 이 때 정원은 2인이었고, 품질(品秩)은 알 수 없다. 또한 고려 말기에는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삼군도총제부(三軍都總制府)·절제사(節制使) 기구 등에도 두었다.

즉, 1390년(공양왕 2) 도평의사사에 경력사(經歷司)가 더 설치되면서 5·6품, 정원 1인의 문반 관직으로 설치되었으며, 삼군도총제부에는 1391년 역시 5·6품, 정원 1인의 관직으로 두었다. 절제사 기구에 있어서는 1389년 도순문사(都巡問使)가 도절제사로 바뀌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두었다가, 1392년에 혁파되고 녹사(錄事)로 대치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종5품 관직으로 중앙의 충훈부(忠勳府)·의빈부(儀賓府)·충익부(忠翊府)·의금부(義禁府)·개성부에 두어 서무를 주관하도록 하였다. 또한 외관으로서 경력과 함께 수령관으로 통칭되면서 관찰사(觀察使)를 보좌하였다.

세종 때 경력이 혁파됨으로써 아감사(亞監司)라 불리기도 하였다. 또한 서반의 종5품 관직으로 중추부(中樞府)에 1인,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에 4인을 각각 두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태종실록(太宗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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