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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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원나라에 의하여 설치되었던 정동행성(征東行省)의 관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익주 (서울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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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 원나라에 의하여 설치되었던 정동행성(征東行省)의 관직.

내용

낭중(郎中)·원외랑(員外郎)과 함께 좌우사(左右司)를 구성하며, 품질(品秩)은 종7품, 정원은 2인이었다.

고려에 정동행성이 처음 설치된 것은 1280년(충렬왕 6)이지만, 낭중 이하의 속관을 둔 것은 1288년안향(安珦)이 원외랑에 임명되면서부터이므로 도사 역시 이 무렵에 설치되었을 것이다.

원나라의 관직임에도 불구하고 정동행성의 다른 속관들과 마찬가지로 고려 사람으로만 충원되었으며, 특히 고려의 고위관리로써 임명하는 것이 원칙이었던 듯하다.

또한, 언제나 정원이 충원되어 있지는 않았으며, 충렬왕 때 박전지(朴全之)·장유(張瑜), 충목왕 때 신인적(申仁適)·악우장(岳友章), 충정왕 때 이인복(李仁復), 공민왕 때 이공수(李公遂)·최개(崔介) 등의 임명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1356년(공민왕 5) 반원개혁(反元改革)의 일환으로 정동행성이문소(征東行省理問所)가 혁파되고 곧이어 좌우사가 혁파됨으로써 폐지되었다가, 1361년 좌우사의 부활과 더불어 다시 두었다. 그러나 1388년(우왕 14)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직후 정동행성이 완전히 혁파되면서 같이 없어졌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원사(元史)』

  • - 「여대(麗代) 정동행성(征東行省)의 연구(硏究)」(고병익, 『역사학보(歷史學報)』 14·19, 1961·1962; 『동아교섭사(東亞交涉史)의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70)

  • - 「高麗に於ける征東行省について」(北村秀人, 『朝鮮學報』 32,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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