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이황(李滉)이 지은 시조.
개설
내용
「한림별곡」·「관동별곡」·「죽계별곡(竹溪別曲)」의 한림별곡류는 고려 사대부의 풍류를 읊었는데, 관능적이고 향락적이다. 작자는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배척하고, 그 대신 새로운 풍류를 제시하였다. 즉 산수유상(山水遊賞)을 통해 올바른 성정을 수양해 가는 일이다.
이별육가는 ‘은(隱)’을 강력히 주장했는데, 그것은 ‘결신멸세(潔身蔑世)’의 오만스러운 내용이다. 작자는 이것을 배척하고 조선 사대부에 맞는 ‘은’을 제시했으니, 바로 “연하(煙霞)로 지블 삼고 풍월(風月)로 버들 사마/태평성대(太平聖代)에 병으로 늘거가뇌/이 듕에 ᄇᆞᄅᆞᄂᆞᆫ 이른 허므리나 업고쟈”의 천석고황이다. ‘은’에는 ‘결신’이 으레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겸선(謙善)’에 그쳐야지 ‘멸세’에 흘러서는 안 된다. 작자는 특히 멸세의 오만을 경계한 것이다.
작자는 한시와 시조의 차이를 ‘영(詠)’과 ‘가(歌)’로서 파악하고, 가창이 낳는 흥에다가 시조의 존재 이유를 설정하였다. 이것은 문학관으로서의 하나의 자각이다. 한시에서는 충족할 수 없는 흥을 시조에서 찾고, 그 흥을 매개로 자기를 창조하는 그런 자각이다. 그 자각이 이 작품을 낳게 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강호가도연구(江湖歌道硏究)」(최진원, 『국문학과 자연』, 성균관대학교출판부, 1981)
-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에 대한 연구(硏究)」(김경한, 『도남조윤제박사회갑기념논문집』, 신아사,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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