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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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제도
노래를 바르게 이끌어 나가도록 인도하는 일을 맡은 악인(樂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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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노래를 바르게 이끌어 나가도록 인도하는 일을 맡은 악인(樂人).
내용

도창악사(導唱樂師)라고도 한다. ≪악학궤범≫ 권2 아악진설도설(雅樂陳設圖說)에서 처음으로 그 명칭이 나타나고 있다.

즉, 오례의(五禮儀)의 등가(登歌)와 헌가(軒歌), 성종 때의 등가와 헌가, 그리고 세종 때의 회례연(會禮宴) 등가와 헌가의 판도(版圖)가 나와 있다.

그 가운데 성종 때의 등가, 곧 당상지악(堂上之樂)에 노래[歌] 24인 외에 도창 2인이 보이고, 또 세종 때 회례연 등가에도 노래 24인 외에 따로 도창 2인이 보이고 있다.

≪세종실록≫ 권132 가례서례(嘉禮序例) 악현(樂懸)에도 회례 헌가와 등가의 판도가 있지만 여기에는 아직 도창이 보이고 있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가공만의 창(唱)으로는 잘 맞지 않아 성종 때 도창이 대두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세종실록≫ 오례의의 회례 헌가는 “3방위(方位)에 각각 편종(編鐘)과 편경(編磬) 3개 틀을 설치한다. …… 금(琴) 6개와 슬(瑟) 4개는 축(柷)·어(敔)의 남쪽에 있는데 한 줄이 된다. 다음에 노래 부르는 가자(歌者) 10인이 한 줄이 되고…….”라고 하여 헌가에 도창이 없을 뿐 아니라, 헌가보다 배가 넘는 24인의 가공을 앉힌 등가에도 도창의 이름은 보이지 않고 있어 세종 때에는 도창이 없었던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성종 때의 아악을 연주하던 제사는 사직(社稷)·풍운뇌우(風雲雷雨)·산천성황(山川城隍)·선농(先農)·선잠(先蠶)·우사(雩祀)·문선왕(文宣王) 등이 있는데, 이 때에는 가자인 가공과 더불어 도창, 즉 도창악사가 반드시 따라 있었다.

도창이 악사의 직책이었음은 그 복식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오례의 등가 악사의 복식을 보면 “복두(幞頭)를 쓰고 붉은 공복(公服)을 입고 금동(金銅) 혁대와 붉은 빛과 흰빛이 섞인 큰 혁대를 띠고 흰 베 버선에 검은 가죽신을 신는다.”고 되어 있다.

또한 성종 때의 등가 도창의 복식은 “복두를 쓰고 붉은 공복에 흰 명주 중단(中單)을 입고 붉고 흰 큰 혁대를 띠고 방심곡령(方心曲領)을 걸고 흰 베 버선에 검은 가죽신을 신는다.”로 되어 있어 악사와 도창의 복식에 큰 차이가 없다. 이것으로 보아, 도창은 곧 도창악사이며 가공(歌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악학궤범≫에는 아악진설도설 외에 속악진설도설(俗樂陳設圖說)도 아울러 들고 있는데, 세종 때의 종묘(宗廟)·영녕전(永寧殿) 등가에 노래 6인, 헌가에 노래 6인이며, 성종 때의 종묘·영녕전 등가·헌가의 노래도 함께 6인으로 변동이 없지만 여기에는 도창이 보이지 않고 있다.

아악진설에서의 노래재비[歌差備] 수효에 비하여 속악진설에서의 노래재비 인원은 매우 적은 것을 알 수 있고, 속악 연주에서 도창악사가 빠져 있는 사실은 적은 수효에 굳이 도창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사정을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그 뒤 종묘 제향에서도 성종 때의 편성에 비하여 차츰 감축되는 추세를 보여, 조선 후기에 오면 전기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감소되고 있다. 또 노래재비만 하더라도 성종 때의 6인에서 인조 때는 2인으로 되었는데, 이것은 조선 말기까지 계속되고 지금도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

궁중의 각종 진연(進宴)에는 가차비(歌差備:노래재비)인 ‘가(歌)’ 또는 ‘가자(歌者)’가 있고, 여기에 도창·도창악사와 같은 기능을 지닌 선창악사(先唱樂師)·선창전악(先唱典樂)이 있었다.

1829년(순조 29)의 진연에는 노래 4인에 선창전악 2인이었고, 1901·1902년의 진연에는 모두 가자 4인에 선창악사 2인씩이어서 대개 진연 때의 주악에는 가공 4인, 선창악사 또는 선창전악 2인의 편제가 정석이었던 것 같다.

참고문헌

『세종실록』
『악학궤범』
집필자
성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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