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창은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가자를 이끄는 노래 잘하는 악사를 말한다. 아악 제례에서 노래는 등가에만 편성되었고, 도창은 등가에서 가자를 이끌며 노래를 지도하는 악사 역할을 담당하였다. 복식은 복두와 강공복을 착용해 가자 및 악생과 구별하였다. 숙종 이후 문묘 제례에서는 헌가에도 노래가 포함되어 도창이 편성되었다. 문묘의 등가·헌가에 각각 가자 2인과 도창 2인을 편성하였다. 종묘 제례에서는 도창이 없었으나 현재는 종묘와 문묘 등의 제사에서 가창자를 모두 도창이라 한다. 또한 20세기 창극에서 무대 옆 해설자 역할을 도창이라 한다.
『악학궤범(樂學軌範)』[1493년]의 아악진설도설(雅樂陳設圖說)에 따르면, 사직(社稷) · 풍운뇌우(風雲雷雨) · 선농(先農) · 선잠(先蠶) · 우사(雩祀) · 문묘(文廟) 제사의 등가(登歌)에 도창(導唱) 2인, 가자(歌者) 24인이 악기 연주자 38인과 함께 배치되었고, 헌가(軒架)는 악기 연주자들로만 구성되었다. 즉, 악장은 등가에서 연주하는 전폐(奠幣) · 초헌(初獻) · 철변두(撤籩豆) 절차에서만 불렸다. 가자와 악기 연주자는 주1과 주2을 착용하였는데, 도창은 이들과 달리 복두(幞頭)와 주3을 착용하였다. 가자와 악기 연주자인 악생(樂生)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노래를 잘하여 창을 이끌어가는 임무가 있는 도창은 악생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악사(樂師)이다. 조선시대에 악사란 호칭은 직제명(職制名)은 아니고, 오랜 세월 악(樂)을 연마한 자를 부르는 경칭(敬稱)으로서, 종6품의 부전악(副典樂)이나 정6품의 전악(典樂)으로 선발되었다. 따라서 도창은 도창악사(導唱樂師)나 도창전악(導唱典樂)으로도 주4
조선시대에 아악을 쓰는 제례에서는 등가에만 노래를 편성하였는데, 숙종대 대사헌 이봉징(李鳳徵)의 상소로 인해, 1690년(숙종 16)부터 문묘에는 영신 · 아헌 · 종헌 · 송신 절차에 연주하는 헌가에도 노래를 편성하였다. 『춘관통고(春官通考)』[1788년경]에 ‘문묘 제사에 등가뿐 아니라 헌가에도 가자 2인과 도창 2인을 편성한다.’라고 명시하였고, 『대한예전(大韓禮典)』권4 서례(序例)에도, 문묘의 등가 · 헌가에 각각 가자 2인과 도창 2인을 편성하였다. 문묘를 제외한 나머지 아악을 쓰는 제례에서는 조선 후기에도 여전히 등가에만 노래를 편성하였는데, 전기에 비해 악대 규모가 많이 축소되어, 정조 · 순조대[1776~1834]에 걸쳐 편찬된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에 따르면, 등가에 악기 연주자 18인, 가자 2인, 도창 2인이 배치되었을 뿐이었다. 즉, 도창은 가자와 함께 노래를 이끌어간 자이다.
『악학궤범』의 속악진설도설(俗樂陳設圖說)에 따르면, 종묘 제사의 등가에 가자 6인과 악기 연주자 30인, 헌가에 가자 6인과 악기 연주자 66인이 배치되어, 등가와 헌가에 모두 노래가 있는데, 도창은 없다. 조선 후기의 『종묘의궤(宗廟儀軌)』[1706년]에 이르러서 악대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는데, 등가와 헌가에 각각 가자 2인이 있을 뿐 별도의 도창은 없다. 그런데 현재 종묘 제사를 지낼 때 등가와 헌가에서 노래 부르는 각 2인을 도창이라 부르고, 현재 문묘 제사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 또한 가자와 도창으로 구분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도창이라 부르고 있다. 즉, 현재 종묘와 문묘 등의 제사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을 모두 도창이라 한다.
한편, 고수의 장단에 맞추어 펼치는 일인극 형태의 판소리가 발전하여, 작품 속의 인물을 여러 소리꾼이 나누어 맡고 대사 · 연기 · 무대장치 등 연극적 요소를 추가한 창극(唱劇)이 20세기에 등장하는데, 창극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 옆에서 판소리나 아니리로 관객의 흥을 돋우고 해설자의 역할을 하는 자도 도창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