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찬영회

  • 역사
  • 단체
  • 대한제국기
1909년 11월 4일 안중근 의사가 사살한 이토(伊藤博文)의 장례식날을 전후로, 민영우(閔泳雨) 등이 중심이 되어 이토의 동상 건립을 추진하려는 목적으로 결성한 친일단체.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성진
  • 최종수정 2026년 0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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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09년 11월 4일 안중근 의사가 사살한 이토(伊藤博文)의 장례식날을 전후로, 민영우(閔泳雨) 등이 중심이 되어 이토의 동상 건립을 추진하려는 목적으로 결성한 친일단체.

연원

1909년 10월 26일, 만주의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는 을사늑약의 원흉 이토를 저격 살해했다. 이토의 장례식은 11월 4일로 정해지고, 정부는 조문사절로 궁내대신 민병석(閔丙奭)조중응(趙重應) 등을 내각대표로 장례식에 특파했다. 조문사절 일행은 11월 1일 도쿄에 도착했으나 험악한 분위기 때문에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채 조선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 이후, 친일파들 사이에서는 이토를 살해한 조선민족의 죄과를 사죄하기 위해 13도 대표로 구성한 사죄단을 일본으로 파견하자는 발의가 대두했다. 이들은 1909년 11월 23일 서대문 밖의 독립관에서 발기회를 개최하기로 취지서를 돌린 후, 그 해 11월 26일 사동(寺洞)에 사무실 간판을 내걸고 임원진을 구성했다.

사무실 간판은 ‘도일사죄 13도 인민대표 임시회의소’였다. 임원은 회장에 윤대섭(尹大燮), 총무에 황응두(黃應斗), 회계에 김태환(金台煥), 서기에 양정환(梁貞煥)이었다.

기능과 역할

1910년 1월 6일 도쿄에 도착한 사죄단 2명은 이토의 산소에 참배하여 사죄문을 낭독했다.

1909년 11월 4일, 이토의 장례식날 서울 장충단에서는 총리 이완용, 시종원경 윤덕영(尹德榮), 한성부민회를 대표한 윤효정(尹孝定) 등 관민 1만여 명이 참가해 이토에 대한 추도회가 베풀어졌다. 같은 날 일진회는 서대문 밖 독립관에서 따로 추도회를 열었다.

동아찬영회는 친일파들의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민영우·이민영(李敏英) 등이 발기하였다. 동아찬영회의 목적은 안중근에게 살해당한 ‘동양의 영웅’ 이토의 동상을 세워 바치는 데 있었다. 동아찬영회 총재는 친일파로서 『한성순보』의 주필을 지냈으며 병합으로 자작이 된 후, 3·1운동 당시 무력소탕론을 총독에게 건의했던 장석주(張錫周)였다. 부총재는 민경호(閔京鎬), 회장은 민영우가 맡았다.

이들은 13도에서 집집마다 10전씩을 동상 건립비로 모금하기로 계획했다. 1910년 1월에는 회장이 윤진학(尹進學)으로 바뀌면서 이토의 사당을 지어 봄, 가을 두 차례로 제사를 지낸다는 계획이 추가되었다.

이 단체의 발기와 거의 같은 무렵인 1909년 10월 30일 이학재(李學宰)와 윤진학(尹進學)이 송덕비건의소(頌德碑建議所)를 발기함으로써 이토의 추모사업이 분리되었다. 송덕비건의소 역시 이토의 송덕비를 세우기 위해 결성된 단체로서, 동상 건립을 추진하던 동아찬영회 총재 장석주가 찬성원의 직위를 맡고 있었다.

이 단체는 발기인 이학재가 3만 원 예산으로 동상 건립을 주장하자, 같은 발기인인 윤진학은 송덕비건의소 감독의 직위를 버린 채, 동아찬영회 회장이 되면서 동상건립파가 된다. 이학재는 동상건립론을 송덕비건립론으로 수정 변절시키면서 송덕비건의소를 주도했다. 동아찬영회와 송덕비건의소는 한때 합병을 논의했으나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참고문헌

  • - 『실록 친일파』(임종국, 돌베개,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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