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식민권력이 자신의 의지를 식민지 주민에게 관철시키는 경로는 군대와 경찰에 의한 물리적 지배, 조선총독부→도부읍면 · 町洞→주민으로 이어지는 행정적 지배, 경제단체(농회, 금융조합, 산업조합)를 통한 경제적 지배, 반관반민(半官半民)의 관제단체(儒道會, 부락진흥회,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등)을 통한 사회적 지배, 학교를 통한 이데올로기적 지배 등이 그것이다. 농촌진흥회는 관제단체의 하나로서 기능하였다.
농촌진흥회는 농촌진흥운동을 촌락단위에서 효율적으로 관철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자작 · 자소작층을 체제내로 흡수하고 농촌내의 조선지배에 대한 지지자를 양성함으로써 식민지제체를 안정시키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다.
식민지 시기 1920년대 중반 이후 식민지 조선에는 교풍회, 진흥회, 동계 등 다양한 명칭의 진흥회가 존재하였다. 조선총독부는 기존의 조직을 농촌진흥회로 일원화하여 근로정신의 함양을 생산과 병행하게 하고, 연락통제 및 시설방면에 일관된 방침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농촌진흥회는 1940년 12월 국민총력 산하의 부락연맹으로 해소되었다.
촌락단위로 설립된 농촌진흥회에서는 진흥회의 지도와 진흥회 사업의 조성, 영농과 생활개선에 관한 각종 시설, 중심인물 양성, 강습회, 강화회와 간담회 개최, 우량부락과 우량진흥회 표창,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의 철저 등의 사업을 추진하였다.
농촌진흥회를 통해 농촌진흥운동을 확대하기로 결정한 조선총독부가 5년만에 전체 촌락의 50%까지 농촌진흥회를 설립한 것은 촌락지배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매우 컸다. 이러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전시총동원시기에 거의 모든 촌락에서 물자와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