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대행업체로서 소위 근대적 기기와 무기, 기술자 고빙 알선을 통하여 이득을 확보하고자 하였으며, 개항장 일대를 거점으로 토지매입을 적극적으로 실시하여 조계지(租界地) 확보에 주력하였다. 궁극적인 목표는 최혜국조관(最惠國條款)을 기본바탕으로 한 이권확보에 중점을 둔 경제침탈이었다.
독일의 대상(大商) 마이어 상사는 1873년 텐진〔天津〕에, 1881년 홍콩에 지점을 설립하였으며 1884년에는 제물포에 세창양행이라는 이름으로 지사를, 1886년에는 상하이〔上海〕에 지사를 설치하였다. 1900년 6월에는 한성(漢城)에도 세창양행의 지점이 설치되었다. 마이어 상사는 독일 본사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무역사업을 관장하고 있었다.
세창양행은 생산공장을 갖춘 주식회사가 아니고 일종의 무역대행업체였다. 초기에는 면제품 등을 수입하고 곡물을 수출하였으나 점차 규모가 큰 물품으로서 1880년대 화폐기기, 인쇄기계 등으로 주종을 바꾸었으며 1890년대 이후로는 무기류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1900년대에는 우피와 홍삼을 대량으로 수출하였다.
근대화 정책을 추진한다는 명목으로 독일에서 도입한 기계와 기술자 고빙은 주로 세창양행이 관장하여 이권을 획득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세창양행은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외교적인 압력을 가하여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한국경제성장을 저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