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주의의 관점에서 민족성을 개량해야 한다고 주장한 개량주의. 역사용어.
개설
사회적 총관계의 관점에서 본다면, 민족개량주의는 식민지의 중층적 경제제도에서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전에 자신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계급의 입장을 대변한다. 즉 식민지 부르조아지의 사회발전전략이 식민지라는 특수상황에서 굴절되어 나타난 이데올로기가 민족개량주의의 실체이다.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민족개량주의의 주체를 타협적 민족주의자로 분류한다.
연원 및 변천
민족주의와 민족개량주의를 바라보는 우리나라 학계의 입장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민족자본의 개념과 실재를 부정하며 민족주의를 부르조아지의 사상이라는 점만 강조하고, 그 역사적 지위와 역할에 대하여 전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의견이 있다. 이 경우 민족주의와 민족개량주의의 구분은 그 필요성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민족주의의 의미를 부인하지 않지만, 민족주의의 양면성 중 그 한계점에 편중하여 취급하고, 민족개량주의와 민족주의의 경계선이 불투명한 의견이 있다. 이 경우는 민족개량주의를 당연히 민족주의의 본성적 산물로만 취급한다.
셋째, 식민지에서 민족주의의 의의를 강조하여 민족운동의 지도이념으로 취급하는 의견이 있다. 이 경우 민족개량주의는 당연히 민족주의가 아닌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경우는 민족주의와 민족개량주의의 바탕에 있는 공통성과 유사성까지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내용
전자는 일제에 대한 대응에 따라 다시 두 집단으로 나뉘어졌다. 그 하나는 1910년 이후 일제의 지주제 보호에 편승하여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일제에 예속화한 집단이었다. 다른 하나는 경제적인 속성상 일제의 경제침탈, 자본침탈에 일정하게 대립하는 측면을 지니면서도 일제의 식민지배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산업의 발전, 교육의 진흥, 참정권론, 자치론 등의 문화운동을 통하여 개량적인 형태의 부르주아 민족운동을 추진한 집단이었다.
3·1 운동 이후 일제는 식민정책으로 소위 문화정책을 표방하며 민족분열을 시도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민족 부르조아지들은 세 갈래로 나뉘어졌다. 첫째, 예속적 부르조아지의 친일활동 둘째, 국외를 중심으로 한 독립전쟁론, 마지막으로 독립준비론 · 실력양성론 · 외교독립론 등을 주장한 민족개량주의였다.
민족개량주의자들은 먼저 경제분야에서의 실력양성으로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전개하였다. 실력양성을 위한 다음의 과제는 교육의 진흥이었다. 이것은 민립대학설립운동으로 나타났다. 참정권 획득 청원은 자치운동으로 발전되었다. 결론적으로 종속적 발전을 지향하였던 민족개량주의는 1930년대 이후에는 일제에 예속화될 수 밖에 없었다.
의의와 평가
민족개량주의자들은 식민지배를 인정하고 그 내부에서의 종속적 발전을 근대화, 자본주의화라고 여기고 이를 기꺼이 선택하였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1930년대 이후 일제의 식민지배의 파쇼화와 대륙침략의 과정에서 그들은 예속화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참고문헌
- 「러시아지배하 폴란드 민족개량주의의 논리와 구조」(임지현,『역사비평』25, 역사비평사, 1993)
- 「일제침략기 반민족 지배집단의 형성과 민족개량주의」(김도형,『역사비평』6, 역사비평사, 1989)
- 「북한학계의 민족부르조아지와 민족개량주의 논쟁」(도진순,『역사비평』2, 역사비평사, 1988)
- 「한국근현대사의 성격과 민족운동」(강만길·서중석,『창작과 비평』60, 창작과비평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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