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지문 ()

한문학
문헌
고려 후기에, 활동한 최해(崔瀣)가 신라 최치원(崔致遠)에서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까지 시문을 모아 편찬한 시문 선집.
문헌/고서
편찬 시기
1338년(충숙왕 복위 7)
간행 시기
1354년경, 1355년(공민왕 4)
편자
최해(崔瀣)
권책수
25권
판본
목판본
소장처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계명대학교 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동인지문(東人之文)』은 고려 후기에 활동한 최해(崔瀣)가 신라 최치원(崔致遠)에서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까지 시문을 모아 편찬한 시문 선집이다. 총 25권의 목판본으로, 『동인지문오칠(東人之文五七)』·『동인지문천백(東人之文千百)』·『동인지문사륙(東人之文四六)』으로 구성되어 있다. 완질은 전해지지 않고 이 가운데 『동인지문천백』과 『동인지문사륙』이 잔권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이전에 김태현(金台鉉)의 『동국문감(東國文鑑)』을 계승하고 이후에 서거정(徐居正)의 『동문선(東文選)』에 영향을 끼친 측면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정의
고려 후기에, 활동한 최해(崔瀣)가 신라 최치원(崔致遠)에서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까지 시문을 모아 편찬한 시문 선집.
서지사항

총 25권의 목판본으로, 『동인지문오칠(東人之文五七)』 · 『동인지문천백(東人之文千百)』 · 『동인지문사륙(東人之文四六)』으로 구성되어 있다. 완질은 전해지지 않고 이 가운데 『동인지문천백』과 『동인지문사륙』이 잔권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편찬 및 간행 경위

『동인지문』의 편찬 및 간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최해의 문집인 『졸고천백(拙藁千百)』에 수록된 「동인지문서(東人之文序)」·「동인사륙서(東人四六序)」, 그리고 이곡(李穀)이 쓴 「최군묘지명(崔君墓誌銘)」 등이다.

「동인지문서」에 의하면 “내가 원나라 과거에 급제하였을 때 원나라 선비들이 우리나라 시문을 보기를 원하였으나, 내가 시문 선집이 없어 부응하지 못하여 수치를 느꼈다.”라고 편찬 동기를 적고 이어서 “신라 최고운(崔孤雲)에서 충렬왕(忠烈王) 때까지 명가로부터 시 약간 수를 얻어 ‘오칠(五七)’이라 제명하고 문 약간 수를 얻어 ‘천백(千百)’이라 제명하고 변려문 약간 수를 얻어 ‘사륙(四六)’이라 제명하고, 총괄하여 ‘동인지문(東人之文)’이라 제명하였다.”라고 하였고, 「최군묘지명」에 의하면 “본국 명현의 저술을 찬집하고 그 제명을 ‘동인지문’이라 하였는데 모두 25권이다.”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동인지문』의 편차는 시로 이루어진 오칠, 문으로 이루어진 천백, 변려문으로 이루어진 사륙 순서로 묶인 총 25권의 시문 선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인사륙서」에 의하면 “후지원(後至元) 무인년(1338) 여름에 나는 『동인사륙』의 편집을 끝마쳤다.”라고 하였으니, 『동인사륙』이 1338년(충숙왕 복위 7)에 편찬되었음을 알 수 있고, 『동인지문』 또한 이때 편찬되었을 것이다.

『동인지문사륙(東人之文四六)』(『동인사륙』)은 진주(晉州)와 복주(福州) 두 곳에서 간행되었는데, 진주에서 간행된 시기는 1354년경이고, 복주에서 간행된 시기는 1355년(공민왕 4)이다. 『동인지문사륙』은 『동인지문』의 일부로서 총 1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완질은 전하지 않고 잔권의 형태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 국립중앙도서관 · 계명대학교 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동인지문오칠(東人之文五七)』 또한 『동인지문』의 일부로서 총 9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완질은 전하지 않고 권7~9가 삼성출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의 간행 시기는 『동인지문사륙』과 마찬가지로 1354년경 혹은 1355년으로 추정된다.

구성과 내용

『동인지문』은 시로 이루어진 오칠, 문으로 이루어진 천백, 변려문으로 이루어진 사륙 순서로 묶인 총 25권의 시문 선집이다. 시문의 수록 범위는 최치원(崔致遠)부터 충렬왕 때 작가까지이다. 일부이지만 현재 전하는 『동인지문사륙』에는 표전(表箋) · 책문(冊文) · 교서(敎書) · 비답(批答) 등의 변려문이 수록되어 있고, 마찬가지로 일부이지만 현재 전하는 『동인지문오칠』에는 오언고시 · 칠언고시 · 칠언율시 · 오언배율 · 오언절구 · 칠언절구 등의 한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 두 책은 모두 작자가 활동한 시기 순서에 따라 작자별로 배열하였고, 작자의 소전(小傳)과 작품에 대한 비점(批點)이나 주해(註解)가 부기되어 있다.

의의 및 평가

『동인지문』은 현재까지 전해지는 최초의 역대 시문 선집이다. 비록 완질은 전해지지 않았고 그 일부인 『동인지문사륙』과 『동인지문오칠』이 잔권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지만, 시문의 수록 범위, 편집 체재 등을 대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김태현(金台鉉)『동국문감(東國文鑑)』이 우리나라 최초의 시문 선집이긴 하지만 현재 전해지지 않는 것에 비해, 이 책은 현재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서지적‧내용적 가치가 매우 크다. 또한 김태현의 제자였던 최해가 스승이 편찬한 『동국문감』을 계승한 측면, 또 이후에 우리나라 최대의 시문 선집인 서거정(徐居正)『동문선(東文選)』 편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측면에서 그 의의를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가정집(稼亭集)』
『고려사(高麗史)』
『동문선(東文選)』
『동인지문(東人之文)』
『졸고천백(拙藁千百)』

논문

변동명, 「김태현의 『동국문감』 편찬」(『진단학보』 103, 진단학회, 2007)
이정섭, 「동인지문오칠」(『동산문화재지정조사보고서』, 문화재관리국,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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