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지문(東人之文)』은 고려 후기에 활동한 최해(崔瀣)가 신라 최치원(崔致遠)에서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까지 시문을 모아 편찬한 시문 선집이다. 총 25권의 목판본으로, 『동인지문오칠(東人之文五七)』·『동인지문천백(東人之文千百)』·『동인지문사륙(東人之文四六)』으로 구성되어 있다. 완질은 전해지지 않고 이 가운데 『동인지문천백』과 『동인지문사륙』이 잔권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이전에 김태현(金台鉉)의 『동국문감(東國文鑑)』을 계승하고 이후에 서거정(徐居正)의 『동문선(東文選)』에 영향을 끼친 측면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총 25권의 목판본으로, 『동인지문오칠(東人之文五七)』 · 『동인지문천백(東人之文千百)』 · 『동인지문사륙(東人之文四六)』으로 구성되어 있다. 완질은 전해지지 않고 이 가운데 『동인지문천백』과 『동인지문사륙』이 잔권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동인지문』의 편찬 및 간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최해의 문집인 『졸고천백(拙藁千百)』에 수록된 「동인지문서(東人之文序)」·「동인사륙서(東人四六序)」, 그리고 이곡(李穀)이 쓴 「최군묘지명(崔君墓誌銘)」 등이다.
「동인지문서」에 의하면 “내가 원나라 과거에 급제하였을 때 원나라 선비들이 우리나라 시문을 보기를 원하였으나, 내가 시문 선집이 없어 부응하지 못하여 수치를 느꼈다.”라고 편찬 동기를 적고 이어서 “신라 최고운(崔孤雲)에서 충렬왕(忠烈王) 때까지 명가로부터 시 약간 수를 얻어 ‘오칠(五七)’이라 제명하고 문 약간 수를 얻어 ‘천백(千百)’이라 제명하고 변려문 약간 수를 얻어 ‘사륙(四六)’이라 제명하고, 총괄하여 ‘동인지문(東人之文)’이라 제명하였다.”라고 하였고, 「최군묘지명」에 의하면 “본국 명현의 저술을 찬집하고 그 제명을 ‘동인지문’이라 하였는데 모두 25권이다.”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동인지문』의 편차는 시로 이루어진 오칠, 문으로 이루어진 천백, 변려문으로 이루어진 사륙 순서로 묶인 총 25권의 시문 선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인사륙서」에 의하면 “후지원(後至元) 무인년(1338) 여름에 나는 『동인사륙』의 편집을 끝마쳤다.”라고 하였으니, 『동인사륙』이 1338년(충숙왕 복위 7)에 편찬되었음을 알 수 있고, 『동인지문』 또한 이때 편찬되었을 것이다.
『동인지문사륙(東人之文四六)』(『동인사륙』)은 진주(晉州)와 복주(福州) 두 곳에서 간행되었는데, 진주에서 간행된 시기는 1354년경이고, 복주에서 간행된 시기는 1355년(공민왕 4)이다. 『동인지문사륙』은 『동인지문』의 일부로서 총 1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완질은 전하지 않고 잔권의 형태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 국립중앙도서관 · 계명대학교 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동인지문오칠(東人之文五七)』 또한 『동인지문』의 일부로서 총 9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완질은 전하지 않고 권7~9가 삼성출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의 간행 시기는 『동인지문사륙』과 마찬가지로 1354년경 혹은 1355년으로 추정된다.
『동인지문』은 시로 이루어진 오칠, 문으로 이루어진 천백, 변려문으로 이루어진 사륙 순서로 묶인 총 25권의 시문 선집이다. 시문의 수록 범위는 최치원(崔致遠)부터 충렬왕 때 작가까지이다. 일부이지만 현재 전하는 『동인지문사륙』에는 표전(表箋) · 책문(冊文) · 교서(敎書) · 비답(批答) 등의 변려문이 수록되어 있고, 마찬가지로 일부이지만 현재 전하는 『동인지문오칠』에는 오언고시 · 칠언고시 · 칠언율시 · 오언배율 · 오언절구 · 칠언절구 등의 한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 두 책은 모두 작자가 활동한 시기 순서에 따라 작자별로 배열하였고, 작자의 소전(小傳)과 작품에 대한 비점(批點)이나 주해(註解)가 부기되어 있다.
『동인지문』은 현재까지 전해지는 최초의 역대 시문 선집이다. 비록 완질은 전해지지 않았고 그 일부인 『동인지문사륙』과 『동인지문오칠』이 잔권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지만, 시문의 수록 범위, 편집 체재 등을 대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김태현(金台鉉)의 『동국문감(東國文鑑)』이 우리나라 최초의 시문 선집이긴 하지만 현재 전해지지 않는 것에 비해, 이 책은 현재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서지적‧내용적 가치가 매우 크다. 또한 김태현의 제자였던 최해가 스승이 편찬한 『동국문감』을 계승한 측면, 또 이후에 우리나라 최대의 시문 선집인 서거정(徐居正)의 『동문선(東文選)』 편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측면에서 그 의의를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