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목판본. 15권.
『동인지문사륙』은 『동인지문』의 일부로서 1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인지문사륙』의 완질본이 15권이나 되는 것을 보면 『동인지문사륙』은 『동인지문』 중에서 사륙문(四六文, 騈儷文)을 모아 증보한 별질본(別帙本)인 듯하다.
『동인지문』의 편찬연대와 수록범위 및 내용을 짐작하게 하는 자료로는, 최해의 문집인 『졸고천백 拙藁千百』과 『졸고천백』에 수록되어 있는 「동인지문서(東人之文序)」 및 이곡(李穀)이 쓴 「최군묘지(崔君墓誌)」(『가정집(稼亭集)』권11) 등이다.
위 자료에 의하면 『동인지문』의 완성시기는 1336년(충숙왕 복위 5)이며 전질 25권으로 신라 최치원(崔致遠)에서부터 충렬왕 때까지가 수록범위로 여겨진다.
「동인지문서」에 나타난 편찬동기는 다음과 같다. 그가 1321년(충숙왕 8) 원나라 제과(制科)에 합격하였을 때에 우리나라 시문에 대해 물어왔으나 시문선집이 없어 보여주지 못한 수치를 당하였다.
그러므로 이 때에 우리나라 시문선집을 찬집할 뜻을 가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동인지문사륙』은 『동인지문』이 간행된 1336년에서 최해가 사망한 1340년 사이에 증보된 것이다.
『동인지문사륙』은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재)아단문고,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데,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권13, 46, 1012, 1315(보물, 1981년 지정), 동인지문사육 권16(보물, 1981년 지정), 동인지문사육 권79(보물, 1981년 지정),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동인지문사육 권1012(보물, 1981년 지정), (재)아단문고 소장 동인지문사육 권1315(보물, 1981년 지정),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소장 동인지문사육 권7~9(보물, 2001년 지정)이 있다.
『동인지문사륙』의 간행은 복주(福州)와 진주(晉州) 두 곳에서 이루어졌다.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 권 제12와 권 제15 끝을 보면 지정(至正) 15년(1355)에 복주관에서 개판(開板)하였다는 간행기록이 표시되어 있다.
복주관은 1277년(충렬왕 3)에 개칭되어 1361년(공민왕 10) 안동대도호부로 다시 승격되기까지 사이에 사용된 안동부의 옛 명칭이다. 이 전래본은 글자에 완결(刓缺)이 있고 마손이 심하여 판독하기 어려운 곳도 있음을 감안하면 판각이 이루어진 훨씬 뒤에 인출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동인지문사륙』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권 제7 끝에는 진주목에서 개판되었다는 간단한 간행기록이 표시되어 있다. 이 판본은 후쇄본이다. 그러나 복주판에 비하면 정교한 편이다.
양쪽 간행본 모두 건(建)·무(武)·부(賦)·흠(欽)·운(運)·요(堯) 등의 피휘결획(避諱缺劃)과 대자(代字)가 나타나 있다. 이것은 고려본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시문의 선발 책자가 이루어진 것은 김태현(金台鉉)의 『동국문감』이 최초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실전되다. 그러므로 그 면모를 확인해볼 수 있는 최초의 시문선집은 『동인지문사륙』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