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파는 송나라의 문인인 소식(蘇軾)의 호인데, 동파관은 동파가 썼던 관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동파관은 『청강선생후청쇄어(淸江先生鯸鯖瑣語)』, 『학봉집(鶴峯集)』, 『경도잡지(京都雜志)』, 『무오연행록(戊午燕行錄)』 등에서 평상시에 쓰는 관모로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와룡관, 정자관과 함께 널리 착용되었으나 와룡관과 정자관에 비해 착용자의 신분이 낮아 위상도 낮게 평가되었다.
이만부(李萬敷, 1664~1732)는 “옛 관건 제도는 지금 대부분 전해지지 않습니다. 정자관, 동파관과 같은 것은 그림을 참고하여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를 보면, 조선에서는 동파관을 『군신도상(君臣圖像)』, 『삼재도회(三才圖會)』, 동파도상 등에서 동파가 쓰고 있는 관모를 모방하여 독자적으로 만들어 썼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한 도상에 따라 동파관의 모양이 다양한데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뒷면에 드림이 한 개 달린 동파관이다. 『군신도상』에서 보듯 외관 없이 내관만 있는 구조에 드림 한 개가 젖혀진 형태, 『삼재도회』의 동파건과 같이 내관과 외관으로 된 이중관에 드림 한 개가 젖혀진 형태 등이 있다. 심득경 초상(沈得經肖像)과 『은송당집(恩誦堂集)』에서 볼 수 있다. 둘째, 뒷면에 드림이 두 개 달린 동파관이다. 사각 모양의 내관과 외관으로 된 이중 관 형태도 있고 사각 모양의 관모 앞면에 두 개의 담(墻) 또는 장식 무늬가 있는 형태도 있는데, 모두 모서리가 양 눈썹 사이에 오도록 쓰고 뒷면 중앙의 모서리를 중심으로 드림이 두 개 달려 있다. 1811년 조선통신사 상상관을 그린 일본의 회화인 『갑신접사록(甲申接使錄)』, 『상서기문(象胥記聞)』에서 볼 수 있다. 셋째, 드림이 앞면에 두 개 뒷면에 두 개 달린 동파관이다. 이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기록된 동파관으로서 안팎으로 4개의 담이 있고 안쪽의 긴 담 네 개의 위쪽에 짧은 담 4개를 꿰매어 늘어뜨려 드림처럼 만든 형태이다. 이 형태는 일본인이 그린 통신사의 관모 그림 중에 남아 있다.
동파관은 정적이고 반듯한 모체에, 동적이고 유연한 드림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관모로서 정중동(靜中動)의 미가 돋보인다. 내관과 외관을 갖춘 동파관은 드림을 제외하면 정자관과 유사하였으므로 18세기에 두 관모가 자주 혼동되었다. 19세기 후반에 정자관이 직선적인 외형에서 곡선적인 외형으로 변화되면서 정자관은 곡선적인 이중관, 동파관은 직선적인 이중 관으로 정립되었다. 다만, 현전하는 동파관 유물에는 조선 동파관의 특징인 드림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