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병관(洗兵館) 광장에 있는 이 비는 두룡포의 사적을 기록한 일종의 사적비이다. 비신의 높이는 130㎝, 너비는 85㎝, 두께 19㎝이며 1974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석은 비신을 받는 비좌(碑座) 없이 이수(螭首)와 비신만으로 이루어졌다. 비신 위에 놓인 장방형의 이수에는 두 마리의 용이 하나의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서로 물고 있는 모습을 조각하였다.
이수의 밑 부분에는 엷게 구름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본래 두룡포의 영문(營門)에 있던 것을 1904년에 현 위치로 옮겼다. 이 비는 조선시대 선조 때 이경준(李慶濬)이 세운 것으로, 수군(水軍)의 본영을 이곳에 건설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비문의 160자 정도는 결실되었고, 아랫부분의 글자도 마멸로 인해 판독이 어려운 부분이 있으나, 대체적인 내용은 알아볼 수 있다. 비문에서는 선조 때의 통제사였던 이경준의 간단한 약력과 집안, 그의 인간됨과 영문(營門)을 세운 업적 및 두룡포가 한낱 어촌에서 그에 의해서 일약 훌륭한 요새가 되었다는 등의 내용을 싣고 있다.
비문 끝부분에 이경준이 이충무공의 업적을 이어받아 이곳에 영문을 옮겨 만세의 이익이 되도록 하였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비문을 지은 사람과 글씨를 쓴 사람 등에 대한 기록은 직명(職名)인 ‘通訓大夫昌原大都護府使(통훈대부창원대도호부사)’, ‘禦侮將軍行訓(어모장군행훈)’ 등만 판독될 뿐, 그 이하는 마모되어 판독할 수 없다. 조선 인조 3년(1625) 제19대 수군통제사인 구인후가 세운 것으로, 당시의 수군제도와 운영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