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기행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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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동문선(권21) / 두류기행록
속동문선(권21) / 두류기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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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1472년(성종 3)김종직(金宗直)이 지은 지리산 기행문.
이칭
이칭
유두류록(遊頭流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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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472년(성종 3)김종직(金宗直)이 지은 지리산 기행문.
내용

1472년(성종 3) 여름 김종직(金宗直)이 지리산을 유람하고 지은 기행문. 작자의 문집인 『점필재집(佔畢齋集)』 권2에 수록되어 있다. 원제(原題)는 ‘유두류록(遊頭流錄)’이다. 『동문선』의 속편 제21권에는 ‘두류기행록’으로 되어 있다.

「두류기행록」이 지어진 시기는 김종직의 문집 속의 연보(年譜)에 의하면, 1472년 8월 15일이다. 「두류기행록」은 작자가 함양고을의 원으로 있던 1472년에 여름 조위(曺偉)의 제의를 받고, 유호인(兪好仁) 등의 4인이 14일부터 5일간 지리산을 유람한 기록이다.

기행의 첫날은 덕봉사(德峯寺)의 중인 해공(解空)이 길을 안내하고 한인효(韓仁孝)가 김종직 일행을 따라 나선다. 뒤이어 법종(法宗)이라는 중도 합세하였기에 그로부터 자세한 역로(歷路)를 알게 된다.

지장사(地藏寺)를 지나 선열암(先涅庵)을 찾아 독녀암(獨女巖)에 얽힌 전설을 듣는다. 이어서 대소승(大小乘)을 논하였다는 의론대(議論臺)의 유래를 알아보고 그 날은 피곤하여 잠을 청한다.

이튿날에 일행은 의탄촌(義呑村)의 원시경(原始境)을 보고 작자는 무릉도원(武陵桃源)과 같은 지대라 말한다. 이들은 영랑재(永郎岾)까지 가파른 산행을 계속하여 소년대(少年臺)에 이른다.

이 때에 이곳의 상황을 목격하고 작자는 목민관으로서 현지 농경생활의 어려움을 실감하며 공물(貢物)을 충당하기 위한 지방민들의 고단한 처지를 이해하려고 한다. 오후에는 천왕봉(天王峯)을 오른다. 그런데 날씨가 좋지 않자 그 곳의 성모묘(聖母廟)에 나아가 산신제를 지낸다.

김종직은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記)』의 기록을 근거로 성모묘에 얽힌 일화에서 지리천왕(智異天王)은 바로 고려 태조의 비(妣)인 위숙왕후(威肅王后)라고 하여, 마야부인(摩耶夫人)이라는 설과 대비시켜 의문점을 제기하고 있다.

3일째는 날씨가 변화하는 사이에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4일째는 날씨가 개자 다시 성모묘에 들어가 감사의 잔을 올리고 북루에 올라 사방의 산경을 살핀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가 흔하지 않음을 자축하는 축배를 든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중봉(中峯)에 오른다.

저여원(沮汝原)으로 오는 사이에 지방민들이 설치한 매 잡는 기구들을 자주 보게 된다. 저물녘에 창불대(唱佛臺)에 올라서서 주변 경관을 구경하고 각 골짜기의 내력을 해공으로부터 듣는다. 이들은 영신사(靈神寺)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날 일찍 지름길을 통해서 하산하게 된다.

「두류기행록」은 김종직이 고을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틈을 내어 산행을 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기에 목민관의 정신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음이 특징이다. 그리고 문장 끝에서 두류산의 숭고함과 웅장함을 예찬하고 있다.

참고문헌

『동문선』(속)
「점필재문집」(성균관대학교대동문화연구원, 『이조명현집』 2,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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