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부교는 개경의 보정문(保定門) 안에 있는 다리로, 이 일이 있은 뒤로는 탁타교(橐駝橋)라고 불렸다 한다.
926년(태조 9)에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은 주위의 여러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맺어가던 중 942년(태조 25)에는 고려에 사신을 보내 낙타 50필을 바쳐왔다.
그러나 고려에서는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무도한 나라라고 하여 그 사신들을 섬으로 유배하고 낙타는 모두 만부교 아래에서 굶겨 죽였다. 이로써 고려와 거란의 외교관계는 단절되었으며, 고려에서는 거란에 대한 적대를 계속 유지하였다.
이듬해에 지어진 「훈요십조(訓要十條)」 가운데서도 거란을 ‘금수의 나라’로 지목하여 그 언어와 제도를 본받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다.
그 뒤 양국간의 관계는 991년(성종 10)부터 1018년(현종 9)에 이르는 동안 세 차례의 전쟁을 거친 뒤 1019년에 화의가 맺어짐으로써 화평을 유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