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3책. 석인본. 1950년 후손 정희(鼎喜)·병민(秉民) 등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다. 권두에 유하(柳昰)·김세호(金世鎬) 등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정희·병민 등의 발문이 있다. 계명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은 시·만사 113수, 권2는 소 2편, 서(書) 42편, 권3은 서(書) 25편, 권4는 경변(經辨) 1편, 잡저 10편, 권5는 잡저 7편, 기 1편, 발 8편, 축제문 6편, 묘표 4편, 묘지·행장 각 2편, 권6은 부록으로 만사 42수, 제문 10편, 행장·묘갈명·유허비서(遺墟碑序)·존주록(尊周錄)·대(對) 각 1편, 문 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의 「등남한산성(登南漢山城)」은 병자호란 때의 민족적 수치를 되새긴 글이다. 서(書)에는 저자의 학문적 관심이 폭넓게 나타나 있다. 「답설봉강선생(答雪峰姜先生)」은 강백년(姜栢年)에게 상례에 대하여, 「답미수허선생(答眉叟許先生)」은 허목(許穆)에게 시사에 대하여, 「여윤백호(與尹白湖)」는 윤휴(尹鑴)에게 경전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저자의 포부를 잘 나타내고 있다.
「무오봉사(戊午封事)」에서는 나라가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임금의 마음의 사정(邪正)에 달렸다고 지적하고, 중화의 정치를 펼 것, 국민에게 은택을 베풀 것, 정책의 취사를 잘할 것, 수령의 선발을 신중히 할 것 등을 강조하였다.
「경변」·「집변(集辨)」·「집설(集說)」 등은 경전과 제자서의 어려운 문구에 대해 주석을 붙인 것으로, 분량은 많지 않으나 아직까지 정확한 해석이 없던 부분을 다루고 있다. 이밖에 김종직(金宗直)을 제향하는 경렴서원에 현판을 내려줄 것을 청한 「경렴서원청액소(景濂書院請額疏)」, 환갑을 맞아 일생을 회고하면서 소감을 기록한 「생조서소감(生朝序所感)」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