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감본풀이 (맹감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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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비문학
작품
제주도 무당굿에서 구연되는 서사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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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제주도 무당굿에서 구연되는 서사무가.
내용

‘사(ᄉᆞ)만이본풀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등장인물의 이름이 ‘사만이’인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모든 굿에서 액막이를 할 때 불린다.

맹감이란 ‘명관(冥官)’ 또는 ‘명감(冥監)’의 와음(訛音)으로 보이며, 그 본풀이의 내용이나 액막이 제차의 내용으로 보아 저승의 사자, 곧 차사의 이칭(異稱)인 듯하다.

액막이는 어떤 굿에서나 반드시 행해지는 제차로, 저승의 차사가 사람의 목숨을 잡아가는 액을 막기 위하여 사람 대신 닭을 죽여 잡아가게 함으로써 무사안녕을 비는 것이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굿하는 날짜와 장소를 설명하는 날과 국섬김을 하고, 굿하는 사유와 액막이를 하는 사유를 고하는 ‘집안연유 닦음’을 한 뒤, 「맹감본풀이」를 하고, 이 「맹감본풀이」에 근거하여 차사를 대접하고, 폐백을 올리고, 사람 대신 닭의 목숨으로 액을 막는 것임을 밝혀 폐백을 불사르고, 붉은 수탉을 죽여 던진다.

그래서 차사가 즐거이 대접받고 닭의 목숨으로 대신 잡아가 주는가를 점쳐 그 결과를 전달하는 ‘분부사룀’을 하고, 이어서 소원을 비는 것으로 끝마친다. 이 제차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맹감본풀이」는 액막이를 하는 근거를 보이는 설화로서의 의의를 가진다.

다른 본풀이들이 대부분 기원 대상신(對象神)의 내력담을 노래하면 그 신이 출현하여 영력을 발휘하게 하는 기능임에 반해, 이 본풀이는 액막이 의례의 근거를 제시하는 기능이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본풀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주년국 땅에 소사만이가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 결혼하여 자식은 태어나고, 부인이 바느질 품팔이로 끼니를 이어갔는데, 살림은 더욱 곤궁해졌다. 어느 날 부인은 머리를 끊어 남편에게 주며, 장에 가 팔아 아이들 먹을 쌀이나 사 오라고 하였다.

사만이는 장에 가 머리를 팔아 석 냥을 받고 쌀을 사러 다니다가 조총을 하나 샀다. 이것으로 사냥을 하면 쌀도 나오고 돈도 나온다는 장사꾼의 말에 솔깃해서 사 온 것이다. 부인의 꾸중을 들으면서 사만이는 사냥을 나갔으나, 며칠이 되어도 빈손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사만이는 들판을 헤매다가 백년 해골을 발견하고, 이것이 자기 집안 조상이 아닌가 하여 집으로 모셔다가 위하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사냥이 잘 되어 사만이는 금방 부자가 되었다.

사만이가 서른 세 살이 되던 해, 어느 밤 꿈에 백년 해골이 백발 노장으로 나타나서 “너는 서른 세 살로 정명이 다 되어 3차사가 잡으러 오고 있으니, 관디 셋, 띠 셋, 신발 셋과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 세거릿길에 가서 정성을 드리고, 집에서는 큰 굿을 해야 액을 막을 수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대로 차려 엎드려 있었더니, 과연 3차사가 내려왔다. 배가 고픈 3차사는 우선 음식을 먹고, 신발을 갈아신고, 관디와 띠를 갈아띠고는 그 주인을 찾았다. 사만이가 주인임을 안 3차사는 사만이의 집에 와서 굿 정성까지 받고 나니 사만이를 잡아갈 수가 없었다.

3차사는 하는 수 없이 그냥 돌아가 ‘사만이 정명 삼십(三十)’이라 쓰여 있는 저승 문서의 열 십(十)자에 한 획을 비껴 그어 일천 천(千)자를 만들어 놓았다. 이리하여 사만이는 삼천 년을 잘 살았다 한다. 이전(異傳)에는 저승 문서의 정명을 고치고, 소사만이 대신 이름이 같은 유사만이 또는 오사만이를 잡아갔다고도 한다.

이러한 연명설화형(延命說話型)의 서사무가는 함경도의 ‘혼쉬굿’, 부여의 ‘장자풀이’ 등에도 나타나며, 고대소설의 「왕랑반혼전(王郎返魂傳)」에서도 유사한 화소(話素)를 찾을 수 있다.

이로써 이 본풀이는 널리 분포되어 있는 서사무가이며 고대소설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초상 때에 사자상에 사잣밥과 짚신 3켤레를 만들어 놓는 습속을 뒷받침하고 있어, 서사무가로는 채록되지 않았어도 음식과 제물로 치성하는 관념은 전국적으로 분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제주도무속자료사전』(현용준, 신구문화사, 1980)
『남국의 무가』(진성기, 프린트판, 제주민속문화연구소, 1968)
집필자
현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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