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통일신라 말 고려 초에 활동했던 승려 자적(慈寂)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로, 자적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고려 태조의 명으로 941년(태조 24)에 세워졌다. 이 비는 이수(螭首)와 귀부(龜趺)를 갖추고 있는데, 이수의 정면 중앙 하부에 제액(題額)이 있으나 마멸이 심하여 알아볼 수 없다. 비신은 화강암으로, 비문 역시 마멸이 심하다.
자적은 통일신라 말 고려 초의 승려로서 법휘(法諱)는 홍준(洪俊), 속성은 김씨(金氏)이며 진한(辰韓) 명가의 후손이다. 일찍이 출가하여 흑암선원(黑巖禪院)에서 진경(眞鏡)을 사사하고 수선(修禪)의 참뜻을 얻었다. 고려 태조는 그의 선덕을 흠모하여 구산선원(龜山禪院)에 머무르며 주지하게 하였다. 939년 10월 구산사(龜山寺) 법당에서 생애를 마치니 태조는 자적선사((慈寂禪師)라 시(諡)하고 탑호를 능운(凌雲)이라 하였다. 찬자(撰者) · 서자(書者)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이보다 2년 전에 세워진 경기도 양평 보리사의 대경대사탑비(大鏡大師塔碑)의 찬자인 최언위(崔彦撝)의 관직과 관계(官階) 및 글자 수까지 일치되므로 이 비의 찬자도 최언위로 추정된다. 최언위는 937년(태조 20)에 건립된 황해도 해주의 광조사진철대사보월승공탑비(廣照寺眞澈大師寶月乘空塔碑)에서도 찬자로 기록되었다.
한편 서자에 대해서는 명문의 내용으로 미루어 옛글씨를 집자한 것이 분명하며, 서체는 구양순(歐陽詢) 계통의 해서(楷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