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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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평왕 때 김무월랑(金無月郞)이 지은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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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신라 진평왕 때 김무월랑(金無月郞)이 지은 가요.
내용

신라 진평왕 때 김무월랑(金無月郞)이 지은 가요. 원가(原歌)는 전하지 않고 작품명과 전승설화가 ≪고려사≫ 악지, ≪증보문헌비고≫ 권106 악고 17 속악부, ≪강릉김씨파보 江陵金氏派譜≫·≪강릉김씨세계 江陵金氏世系≫ 등에 전한다.

문헌에 따라 제작연대와 작자가 다르게 나타난다. ≪고려사≫에 의하면, 작자는 설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서생(書生)이며, 시대는 고구려조에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고구려가요라고 보았다.

이와 달리 ≪증보문헌비고≫에서는, 명주(溟州)는 고구려시대의 지명이 아니고 신라 때 개칭한 지명이므로 신라의 가요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또 설화의 내용에 나오는 과거제도가 고구려에는 없었기 때문에 고려악이 아닌가도 의심하고 있다. 이 경우도 작자는 설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서생이다.

그러나 ≪강릉김씨파보≫나 ≪강릉김씨세계≫의 설화내용으로 판단해볼 때 작자는 설화의 주인공인 신라 진평왕 때 사람 김무월랑(金無月郎 : 惟靖公의 別號로 爲靖·惟正·惟端이라고도 하며, 강릉김씨의 시조인 金周元의 아버지)이 되며, 이에 따라 작품의 시대도 신라가 된다.

≪고려사≫의 기록인, “드디어 이 노래를 불렀다(遂歌此曲).”는 기록을 믿는다면 노래를 지은이도 무월랑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그간 학계에서는 ≪고려사≫에 기록된 ‘탁제거업(擢第擧業 : 과거를 보아 합격함.)’이라는 어구에 얽매어 고려의 가악이라고도 보았고, 고구려의 가요로도 보았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과거제도가 신라의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라는 것과 대치, 설명된다. 그렇다면 이 노래는 통일신라 때 발생하여 궁중악으로 채택된 것이 고려로 전해졌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작자·연대의 혼효(混淆)에도 불구하고 <명주가>와 관련된 전승설화의 내용은 대체로 일치한다. ≪강릉김씨파보≫에 전하는 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라 중엽 강원도명주(지금의 강릉) 남대천(南大川) 남쪽 연화봉 밑에 서출지(書出池)라는 연못이 있고, 그 못가에 박연화(朴蓮花)라는 예쁜 아가씨가 살고 있어 날마다 못가에 나와 고기에게 밥을 던져 주었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내자 고기떼들은 연화의 발걸음 소리만 나도 물 위로 떠올라 모여들었다.

어느 봄날 하루는 연화가 못가에 나와 있으려니까 웬 서생이 자기를 보면서 못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여러 날이 지나 그 서생이 한 장의 편지를 떨어뜨리고 가므로 이상히 여겨 주워보니 그것은 자기에게 사랑을 고백한 내용이었다. 서생의 이름은 무월랑이었다.

다음날 답장을 썼는데, “부모가 계시기 때문에 여자로서는 아무렇게 경거망동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디 당신이 저를 사랑하신다면 더욱 글공부에 힘써서 입신양명을 하시면 그때 부모의 승낙을 받아서 당신의 아내가 되겠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그 말에 감동된 무월랑은 서울(경주)로 가 열심히 학문에 전념하고 있었다.

한편 연화의 집에서는 나이가 과년하므로 혼처를 정하고 오래지 않아 날을 받아 성례를 시키려 하였다. 그를 안 연화는 편지를 써가지고 못가에 나와, “너희들은 오랫동안 내 손에 밥을 먹고 자라왔으니 내 간절한 사정을 서울로 간 뒤 한 장의 편지조차 없는 낭군에게 전해다오.”라고 사람에게 말하듯 하면서 그 편지를 물 위에 던졌다. 그러자 그 중에 가장 큰 잉어가 편지를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편 서울에 온 무월랑은 어느 날 어머니에게 드리려고 큰 물고기 한 마리를 사 와서 배를 갈랐다. 이상스럽게도 그 속에 편지 한 장이 있어 떼어보니 분명 연화가 자기에게 보낸 급한 사연이었다. 이를 보고 무월랑은 자기 부모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그 길로 명주로 말을 달렸다.

명주에 도착하니 마침 새신랑이 문으로 막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급히 가로막고 연화의 부모를 불러 그들의 진실한 사랑 관계를 이야기하였다. 연화의 부모가 이르기를, “이 지극한 정성이야말로 진정 하늘까지 뜻이 통할만한 일이다.”라고 하면서 새신랑을 보내고 무월랑을 맞아서 사위로 삼았다.

실제로 주인공 무월랑은 족보에 명시된 대로 신라 때 시중(侍中) 벼슬까지 지냈고 사후에 왕으로까지 추존된 사람으로, 그 시대와 인물이 밝혀졌다.

강릉 남대천에는 당시의 서출지까지 보존되어 있으며, 그곳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월랑의 ‘월(月)’자와 연화의 ‘화(花)’자를 딴 ‘월화정(月花亭)’이 있어 이 설화가 사실임을 입증해주고 있다.

이 설화는 잉어가 자기에게 먹이를 주어 길러준 주인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여 주인의 편지를 전달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보은설화의 한 유형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 설화는 고전소설 <춘향전>과 여러가지 면에서 유사한 점을 지니고 있다. 곧, 서생이 유학하러 명주에 갔다가 한 양가녀를 만난 부분은 이도령이 부친을 따라 남원에 가서 광한루의 결연으로 춘향과 통정(通情)하는 장면과 흡사하다.

또 서생이 경사(京師)로 돌아와 거업(擧業)을 익히는 부분은 이도령이 한양으로 돌아와 시서(詩書)·백가어(百家語)를 익혀 등과하는 장면과 비교된다. 이러한 점에서 <춘향전>의 근원설화로 보는 견해도 있다.

참고문헌

『고려사』
『증보문헌비고』
『강릉김씨파보(江陵金氏派譜)』
『강릉김씨세계(江陵金氏世系)』
『한국시가사강』(조윤제, 을유문화사, 1958)
『한국시가의 민속학적 연구』(김선풍, 형설출판사, 1977)
『한국문학통사』 1(조동일, 지식산업사, 1982)
「명주가재연구」(김선풍, 『한국문학론』, 일월서각,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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