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에 가깝게 있는 크고 작은 사구(砂丘)의 위와 낮은 사지의 광대한 지역에 산포되어 있었으며, 1916년 일본인 도리이(鳥居龍藏)에 의하여 조사된 바 있다.
조개더미는 지역에 따라 A부터 H까지 기호가 붙여졌는데, A지역은 패층(貝層)의 두께가 75㎝ 정도이며 패각(貝殼)의 종류가 다양하지만, 사구의 유적이기 때문에 표토가 흘러내려 유물이 패각(貝殼) 등과 함께 씻겨나와 산란되어 있다.
유물 가운데 토기는 대체로 두 종류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다량의 석립(石粒)이 혼입된 바탕흙[胎土]에 문양이 거칠고 색조가 밝은 적갈색의 것이며, 다른 하나는 고운 바탕흙에 문양이 곱고 색조가 짙은 적갈색의 것이다.
문양은 대부분이 생선뼈무늬[魚骨文]이며, 토기조각으로 보아 항아리 모양의 기형(器形)도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석기로는 돌검[石劍]의 선단부(先端部) 조각, 돌살촉[石鏃], 돌도끼, 대롱옥[管玉] 조각 등이 있으나, 빗살무늬토기와 같은 시기의 것인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동물뼈로는 사슴·멧돼지 및 포유동물의 것이 발견되었다. 이밖에 철기시대 이후의 것으로 보이는 쇠도끼·쇠살촉·철재(鐵0xF973)가 A·C·H 패총 등에서 채집되어 빗살무늬토기시대 이후의 유물들도 이 유적에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빗살무늬토기유적 지역군으로는 중서부군에 속하며, 시기적으로는 빗살무늬 후기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