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광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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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지명
함경북도 무산군 무산읍 창렬동을 중심으로 동면 강선동 · 풍산동, 풍계면 용천동 일대에 걸쳐 있는 철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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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함경북도 무산군 무산읍 창렬동을 중심으로 동면 강선동 · 풍산동, 풍계면 용천동 일대에 걸쳐 있는 철광산.
내용

무산에서 동쪽으로 5㎞ 정도 떨어져 있는 무산철산역 부근에 있는 높이 953m의 산이 철광맥으로 얽혀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산비탈에 선광장(選鑛場)과 제철소가 설치되어 있다. 선캄브리아기의 변질수성암 중에 포함된 자철광상(磁鐵鑛床)이다.

1916년에 발견되었는데 본격적인 개발은 1935년부터였다. 매장량이 17억톤이나 되고, 노두(露頭 : 땅 위에 드러난 부분) 길이가 243m에 이를 뿐 아니라 광석의 채굴과 수송을 하는 데 편리한 무산이 가까이에 있는 유리한 입지조건을 갖춘 세계적인 큰 철산이다. 발견되었을 당시 세인의 관심을 크게 끌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함철품위(含鐵品位)가 당시 채산품위(採算品位)이던 40∼45%보다 훨씬 못 미치는 35∼38%에 불과한 빈광(貧鑛)이라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채광을 포기하고 방치해두었다가, 일본이 아시아·태평양을 침략하기 위하여 다량의 철광석이 필요해지고 일본을 고립시키기 위하여 미국·영국 등이 중심이 되어 일본에 대한 철광석 수출을 제한하였으므로 일본은 할 수 없이 무산철산의 개발에 착수하기에 이르렀다.

마침 이 무렵 채광(採鑛)·선광(選鑛) 등에 대한 기술이 크게 발달하였고, 특히 자력(磁力)에 의한 선광법(選鑛法)이 개발됨에 따라서 무산철산은 당시 시대적 각광을 받아 일약 세계의 이목을 집중하게 되었다. 무산철산에 가까운 창렬동에 대규모의 선광 시설을 갖추는 한편, 소규모이기는 하나 제철소를 건설하여 무산은 제철도시로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일부 제철을 하는 한편 대부분의 철광석은 무산선과 함경선을 통하여 청진으로 보내서 제철한다. 청진항에는 광복 전 니혼제철(日本製鐵)·미쓰비시제철(三菱製鐵) 등의 2개의 대규모 제철소가 건설되어, 이곳에서 제철·제강을 한 다음 조광(粗鑛 : 정선하지 않은 광석)과 강괴(鋼塊)를 일본으로 가져갔다. 광복 후 이곳에서 산출되는 철광석은 일본을 비롯하여 외국으로 수출하는 양이 많았으나 근년에는 이곳의 제철소를 확장하여 제철·제강 등의 일관 작업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광업지』(윤성순, 대한중석광업회사, 1952)
『함경북도지』(함경북도지편찬위원회, 1976)
집필자
이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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