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경잠(景潛), 호는 장륙재(藏六齋) 또는 덕촌(德村). 아버지는 문필징(文必徵), 어머니는 나주나씨(羅州羅氏) 통덕랑(通德郞) 나적유(羅積有)의 딸이다. 7세 때 그의 조부인 문회우(文會友)에게 『사략(史略)』을 배웠다.
1696년(숙종 22) 사마시에 합격하고, 1705년(숙종 31) 증광시(增廣試) 문과에 장원하였다. 1707년에서 1709년 사이에 할머니, 아들, 부친상을 연거푸 당하였는데, 예를 다하여 3년상을 치루었다.
그 뒤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거쳐 청안현감(淸安縣監)으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근사록(近思錄)』, 『성리서(性理書)』를 깊이 연구하였고 『주역(周易)』에 조예가 깊었다. 저서로는 『장륙재유고(藏六齋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