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사섬시부정, 통례원찬의,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왜적을 치는 데 크게 공을 세웠다. 1600년 헌납·교리를 거쳐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이 되고, 이듬해 외직인 창원판관(昌原判官)으로 나갔다가 1602년 장령(掌令)이 되었다. 1603년 집의(執義)가 되어 스승인 정인홍을 모함한 이귀(李貴)를 탄핵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고향인 영남으로 돌아갔다가 곧 상의원정(尙衣院正)으로 복직, 이어서 필선(弼善)이 되었다. 1604년 사섬시부정(司贍寺副正)을 거쳐, 통례원찬의(通禮院贊儀)가 되었다. 그 뒤 종묘서영(宗廟署令)을 지내고, 이어서 사간을 역임하였다. 사간 직임을 잘 수행하여 『대학』 한 부를 하사받았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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