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문장신’이라고도 한다. 특히, 제주도에서는 중요한 신 중의 하나로 ‘문전(門前)’이라고 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시대에 처용의 얼굴을 문에 붙여서 역신을 쫓는 풍습이 시작되었고, 고려 예종 때는 도교가 들어와 문신상을 세웠다. 설날·입춘·단옷날에 그림이나 글씨를 대문짝에 붙이는 민속은 도교의 풍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에 의하면 문신의 개념이 중요한 제주도를 제외하고, 육지에서의 문신풍속은 서울이 중심이 된다. 가옥구조에서 대문의 비중이 큰 곳은 농촌보다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육지에서의 문신은 대문에 처용이나 도교의 문신상을 그려 붙이거나, ‘입춘대길’의 글씨나 그림으로 대치된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아주 중요한 신으로 믿어지고 있다. 제주도에서 문전은 항상 문을 지켜서 집안의 모든 일을 수호한다고 믿기 때문에, 가신 중에서 가장 상위의 신으로 여겨 위한다. 문전에는 일문전과 뒷문전이 있다. 일문전은 제주도 민가의 삼방[上房:마루방]의 앞쪽 문의 신을 말하고, 뒷문전은 삼방의 뒷문의 신을 말한다.
이렇게 앞문의 신과 뒷문의 신을 구분하면서도 뒷문전을 위하는 제의는 없고 일문전에 대한 제의만 있어서, 문전이라 하면 삼방의 앞쪽 문신을 일컫는 말로 되어버렸다. 삼방의 앞쪽 문을 이 지방에서는 대문이라고 한다. 이는 큰 문이라는 뜻으로서 손님이나 가장이 떳떳이 출입하는 문은 이 문이 되는 셈이다. 그러니까 이 대문의 신이 문신의 대표적인 것이 된 것이다.
문전본풀이에 의하면 아버지는 집의 출입로에 대문 대신 가로 걸쳐놓는 정낭의 신이 되고, 어머니는 부엌의 조왕이 되고, 계모는 측간신이 되고, 아들 일곱 형제 중 첫째에서 다섯째까지는 오방토신(五方土神)이 되어 집터를 지키고, 여섯째아들은 뒷문전이 되고, 똑똑하고 영리한 막내아들은 일문전이 되었다고 한다.
이 신화에 근거하여 일문전을 상위의 문신으로 위하고 있고, 또 조왕과 측간신은 시앗의 원수간이라 하여 부엌과 측간은 멀리 짓고, 측간의 돌 하나 나무 하나도 부엌에 가져오지 않는 관습이 있게 되었다. 문신에 대한 제의는 굿이나 유교식 제례에서 지내지 않는 일이 없다. 굿에서는 모든 굿을 할 때 문전본풀이를 하고, 또 신년가제(新年家祭)로 문전비념을 해마다 하여 복을 빌기도 한다.
유교식 제례에서는 명절의 차례·제사·소상·대상 등 집안에서 하는 모든 조상숭배 때 제의를 지내기에 앞서 이 문신에게 먼저 제를 지낸다. 이를 문제(門祭) 또는 문전제라 하는데, 이 제는 삼방에 앞쪽 문을 향하여 제상을 차려놓고 헌관 한 사람이 단잔으로 지내는 것이다. 유교식 제례의 문전제가 무속의 문신신앙에서 유래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제주도에서는 모든 제의에서 문신을 위하므로 ‘문전 모른 공사[祭儀] 없고, 주인 모른 나그네 없다.’는 속담까지 회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