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개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정유재란 때 이순신의 휘하에서 명량해전에 참전한 의병장.
이칭
순해(舜諧), 순서(舜瑞)
휴헌(休軒)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5년(명종 20)
사망 연도
1620년(광해군 12)
본관
남평(南平,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주요 관직
선전관|직장
관련 사건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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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정유재란 때 이순신의 휘하에서 명량해전에 참전한 의병장.
개설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순해(舜諧) 또는 순서(舜瑞), 호는 휴헌(休軒). 아버지는 현령 문위세(文緯世)이며, 큰아버지인 첨지중추부사 문위지(文緯地)에게 출계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생부인 문위세와 함께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켜 용담(龍潭)에서 방어진을 구축하고, 치열한 항전을 벌였다. 무수한 전투를 벌여 세 번이나 크게 적을 물리쳤다. 그 공으로 선전관(宣傳官)에 특배되고 곧 군자감(軍資監)에 승직되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적의 첩자인 요시라[要時羅]의 꾐에 빠진 도원수 권율(權慄)의 무모한 독전으로 우리 수군이 참패하자, 10척의 배를 거느리고 새로 통제사가 된 이순신(李舜臣)의 막하로 달려가서 명량해전에 참가하여 큰 공을 세웠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직장(直長)이 되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
『남평문씨대동보(南平文氏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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