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곶보

  • 예술·체육
  • 유적
  • 조선 후기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조선후기 강화유수 윤이제 관련 보루. 작은성.
이칭
  • 이칭미곶돈대(彌串墩臺), 미루지돈대(彌樓只墩臺), 미루지돈대(美樓只墩臺)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소재구 (국립청주박물관, 미술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조선후기 강화유수 윤이제 관련 보루. 작은성.

내용

높이 2.16m, 너비 1.28m. 보루는 강화도 남서부의 해안을 감시하기 위하여 1679년(숙종 5)에 정비, 축조되었다.

예로부터 강화도는 우리나라 서해연안에서 예성강·임진강·한강 등의 물길을 따라 개성·한성 등 왕도를 비롯한 중부내륙지방으로 외적이 침투하거나 황해도 이북으로 북상하는 것을 차단하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몽고족의 침입과 병자호란 당시는 왕실의 피난처가 되었기 때문에 최근세까지도 해안방비에 심혈을 기울여왔던 곳이다.

특히, 조선 숙종 때 강화도에 6진(鎭)·7보(堡)·9포대(砲臺)와 더불어 53개의 보루가 축조되었는데, 그 중 49개의 보루는 1679년 윤이제(尹以濟)가 강화유수로 재직할 당시 왕이 병조판서 김석주(金錫胄)를 파견하여 지형을 순찰하고 축조를 명한 것으로, 이 공사에는 함경도·황해도·강원도 등 3도의 승군(僧軍) 8,000명과 어영군(御營軍) 4,000명이 동원되었다.

미곶보도 바로 이 49보루 중의 하나로 현재 화도면에는 장곶(長串)·북일곶(北一串)·미곶 등의 보루가 3㎞ 가량의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가운데 동편에 자리잡은 미곶보는 미곶돈대(彌串墩臺)·미루지돈대(美樓只墩臺, 彌樓只墩臺)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이 보루는 40∼120㎝의 네모난 돌로 벽을 쌓았는데 지형을 따라 타원형으로 이루어졌으며, 여기에는 해안을 향하여 네 곳에 대포를 설치하였던 자리가 남아 있다.

또, 윗 부분에는 벽돌을 사용하여 여장(女墻)을 두른 흔적이 보이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가운데로 난 출입구는 다른 보루와 달리 무지개문[虹霓門]을 이루고 있어 특이하다. 보루나 돈대는 모두 작은 성 모양으로 축조된 진지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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