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사 ( )

불교
유적
국가유산
삼국시대,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이 당시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에 창건한 사찰.
유적/건물
건축 양식
3탑 3금당
건립 시기
백제 제30대 무왕 당시
소재지
전라북도 익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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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미륵사는 삼국시대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이 당시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에 창건한 사찰이다. 미륵의 삼회설법을 상징하는 3개의 석탑이 세워진 절로 유명하다. 금당도 3개인 3탑 3금당 양식이다. 무왕과 선화공주가 세운 절로 알려져 왔으나 미륵사 서탑에서 나온 기록에는 무왕과 사택왕후가 지은 것으로 나와있다.

목차
정의
삼국시대,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이 당시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에 창건한 사찰.
건립경위

미륵사는 백제 무왕주1 삼국시대 절 가운데 백제의 절로는 최대 규모이다. 백제 무왕이 왕비와 함께 사자사(獅子寺)에 행차하였을 때 용화산(龍華山) 아래 큰 못가에 이르자 미륵삼존(彌勒三尊)이 나타났으므로 수레를 멈추고 경의를 표하였다. 왕비가 왕에게 이곳에 절을 세우기를 청하였으므로 지명법사(知命法師)의 도움으로 못을 메워 절을 창건하였다.

이 절에는 미래불인 미륵이 3회의 설법으로 미래의 중생을 모두 제도한다는 용화삼회설(龍華三會說)에 입각하여 전(殿)과 탑과 주2를 각각 3곳에 세우고 미륵사라 하였다. 또한 미륵사 절터는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인 서동(薯童)과 선화공주(善化公主)의 설화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미륵사 서탑 보수 · 정비 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금제 사리 봉안기에 따르면 절을 창건한 사람이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변천

창건 이후의 역사는 자세하지 않으나, 719년(성덕왕 18) 9월 금마군(金馬郡)의 미륵사탑에 벼락이 떨어졌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전한다. 이는 미륵사의 탑에 벼락이 친 것을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1407년(태종 7) 나라에서 여러 고을의 자복사찰(資福寺刹)을 정할 때 충청북도 청주시의 보경사(菩慶寺),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의 진구사(珍丘寺) 등의 여러 사찰과 함께 자복사찰로 지정된 것으로 보아 이때까지는 미륵사가 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절터에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된 미륵사지 석탑과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으며, 절터 전체는 1966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92년 절터 주변에 흩어진 옛 석재들을 일부 재사용하여 동탑(東塔)을 복원하였다. 2013년 보수 정비 위해 해체된 서탑(西塔)은 일제 때 시멘트를 제거하고 2019년에 복원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단행본

권상로 편,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논문

김상현, 「백제 무왕대 불교계의 동향과 미륵사」 (『한국사학보』 37, 고려사학회, 2009)
길기태, 「미륵사지 사리봉영기에 투영된 불교사상」 (『한국고대사연구』 106, 한국고대사학회, 2022)
박현숙, 「백제 무왕의 익산경영과 미륵사」 (『한국사학보』 36, 고려사학회, 2009)
조경철, 「백제 익산 미륵사 창건의 신앙적 배경-미륵신앙과 법화신앙을 중심으로」 (『한국사상사학』 32, 思想社會硏究所, 2009)
조경철, 「한국 고대의 정토신앙과 신정도시(神政都市)」 (『한국사상사학』 71, 思想社會硏究所, 2022)
주석
주1

건물이나 조직체 따위를 처음으로 세우거나 만들다. 우리말샘

주2

정전(正殿) 아래로 동서(東西)에 붙여 지은 건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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