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속적인 어원설명방법이므로, ‘통속어원(通俗語源)’이라고도 하며, 연상작용에 의하여 어원을 설명하므로 ‘연상적 어원(聯想的語源)’이라고도 한다. 또한, 서구에서는 어원탐색이 과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가공에 의하므로 부실어원(不實語源, fake etymology)이라고도 한다.
특정한 언어형식이 역사적으로 왜 그러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창작적으로 거론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아무 연관성이 없는 두 언어형식의 공통 내지는 유사를 기반으로 한 것이므로 때로는 터무니없는 어원설명이 되기도 한다.
언어학자들이 연구하는 과학으로서의 어원론은 구체적인 자료와 과학적인 처리방법에 의해서 어원을 탐색하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민간어원은 객관적인 자료나 과학적인 방법이 없이 주로 음의 일치 내지는 유사에 의해서 본능적이고 직감적으로 일어나는 연상에 의한 통속적인 어원해석이다.
예를들면, ‘행주치마’의 ‘행주’와 ‘행주산성’의 ‘행주’가 분절음소만으로는 동음이기 때문에 연상관계가 성립된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싸움에서 부녀자들이 허리에 두르고 돌을 날랐기 때문에 그것을 행주치마, 즉 ‘행주(幸州)치마’라고 한다는 해석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의 옛 문헌의 기록은 ‘里瑯쵸마(이랑치마)’로 ‘행주’와는 음이 같지 않다.
이와 유사하게 음의 일치로 인해 연상관계가 성립된 것으로 ‘손돌’을 들 수 있다. ‘손돌’은 강화도 근처 바다에 있는 좁은 목으로 ‘좁다, 가늘다’의 의미인 ‘솔다’의 관형형에 ‘량(梁)’을 의미하는 ‘돌’이 결합한 것이다. 그런데 ‘손’을 ‘손돌’이라는 뱃사공과 관련지어 해석하고, 이에 더해 ‘손돌풍’과 ‘손돌이 추위’ 등의 단어도 새로이 생겨나고 있다. 이 역시 ‘손’이라는 음의 일치로 인해 발생한 민간어원적 해석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음의 일치에 형태상의 유사성이 더해져 민간어원적 해석을 이끌어내는 경우도 있다. ‘소의 작은 창자’를 가리키는 말인 ‘곱창’의 어원을 ‘곱다(曲)’와 관련시키는 것도 이러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곱’의 원래 의미는 ‘동물의 지방’으로, ‘곱창’은 다른 창자에 비해 지방이 많은 창자라는 것이지만, 언중들이 ‘곱창’의 구불구불한 모양을 바탕으로 ‘곱’을 ‘곱다’에 결부시킨 것이다.
이런 어원탐색은 어음(語音)이 일치되지 않고, 다만 유사할 때도 이루어진다.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벼[稻]를 ‘나락’이라고 하는데, 이 ‘나락’의 어원을 ‘나록(羅祿)’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나록’이란 ‘신라의 녹’이라는 의미이다. 신라에서 ‘벼’로써 녹봉(祿俸)을 지급하였다 하여 ‘나락’을 ‘나록’에 결부시킨 것이라 생각된다. 쉽게 말하면, 두 개의 언어형식의 발음이 서로 같거나 유사하다고 하여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들 상호간에 의미적인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는 것이다. 동음 내지는 유사한 음운론적 단위이기 때문에 성립되는 연상작용에 의해서 관계가 지어질 뿐이다.
음의 유사성에 의한 어원 탐색은 ‘소나기’의 예에서도 나타난다. 옛날 어느 농부 두 사람이 오늘 비가 올 것인가 안 올 것인가를 두고 내기를 했는데, 내기에 이긴 사람에게는 가지고 있던 ‘소’를 주기로 했다. ‘소’를 걸고 ‘내기’한 비를 ‘소내기’라고 했던 것이 오늘날의 ‘소나기’가 되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현대국어 이전 시기의 자료를 보면 ‘소나기’는 ‘쇠나기’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는 ‘매우’의 뜻을 가진 ‘쇠’와 ‘나다(出)’의 어간인 ‘나-’에 명사형 어미 ‘-기’가 통합된 것이다.
이와 같은 어원탐색은 일종의 어희(語戱)로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병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민간어원이라고는 하지만, 이 가공적인 어원을 만들어내는 것은 지식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며, 그것을 말하는 것도 지식층 인사들이다. 이런 견해는 동양과 서양을 구별할 것 없이 공통되는 것 같다.
우리의 경우, 고유어를 한자어나 한문의 구절과 결부시켜서 설명하는 일이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는 것쯤 쉽게 알 수 있다. 한자어나 한문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런 어려운 문구를 연상할 능력이 없다.
『동언고략(東言考略)』에 보면, 사계절의 이름을 어려운 말로 설명한 대목이 있다. 봄[春]은 ‘보음’이라고 하는 말인데, 그것은 복음(伏蔭)에서 온 것이다. 그 말의 의미는 양기(陽氣)가 자라고 음기(陰氣)가 엎드린다(수그러진다)는 것이다. 여름[夏]은 ‘열음’이다. ‘열음’은 열음(熱陰)과 음이 같고 의미가 같다. 이 의미는 열기(熱氣)가 극에 다아서(또는 다해서) 음기(陰氣)가 생긴다는 것이다. 가을[秋]은 ‘가월’이라고 하는데 가월은 음(音)과 의미가 가월(嘉月:아름다운 달)과 같다. 가월은 만물이 아름답게 성숙되는 달(철)이라는 의미이다. 겨울[冬]은 ‘계월’인데, 이것은 계월(計月)의 음과 의미가 같다. 계월(計月)은 군국(郡國:郡縣과 國을 이름. 한(漢)나라 때의 제도)에서 해마다 회계(會計)보는 관리를 상경시켜서 회계보고를 하는 달(철)이라는 의미다.
이것은 상당한 지식층이 아니면 이런 연상이나 설명을 할 수가 없을 것이며,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도 못할 것이다. 음양의 이치를 동원하고, 중국 한대(漢代)의 제도까지 원용하였다. 의미론적으로도 대응되는 단어와 연상관계를 가지게 된다. 형태론적인 유연성과 함께 의미론적인 유연성도 아울러 가지게 된다.
민간어원을 성립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은 두 개 언어형식의 음운상의 유사와 이로 인한 심리적인 연상작용만으로 족하다. 그러므로 특정한 단어에서 의미적인 유연성이 불분명하면 할수록 민간어원의 영향을 받기 쉽다. 유연성이 분명한 경우 엉뚱한 다른 말과 인연을 맺어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외래어는 영향을 받기 쉬운 말이다. 어떤 외래어가 왜 그런 의미로 사용되는지는 그것이 속하여 있는 외국어에 정통한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영어 또는 기타 구미어의 동사나 형용사를 들여다가 한국어 동사의 조어법에 따라 어근으로 이용하는 것은 언어구조상의 차이에서 결과된 것이기도 하지만, 외국어에 능통하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다.
영어의 ‘sign’은 한국어의 ‘서명하다’와 용법이 매우 비슷하다. 그리고 한국어의 ‘서명’에 해당되는 말로는 ‘signature’가 따로 있다.
한국어의 ‘서명’은 ‘서명하다’의 어근이 된다. ‘sign’을 ‘서명’이라는 말과 대응되는 명사로 사용하여 ‘서명을 하여라’와 같이 쓰기도 하고, 이것을 어근으로 하여 거기에 ‘∼하다’를 접미해서 ‘서명하다’와 같은 의미를 가지는 ‘영어·한국어’의 혼종어 ‘사인하다’ 라는 말을 만들어서 동사로 사용한다. 문법적·의미적인 유연성을 잘 알지 못하는 데서 대담하게 이런 조어법을 택한 것이다.
영어를 모어(母語)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유연성이 분명히 인식되는 말도 그것을 차용한 외국인들에게는 모호하게 느껴지거나 전연 무감각한 일이 생긴다. 그래서 무승격한 말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음만 유사하면 다른 어떤 말과도 결부시킬 수가 있다.
영어의 ‘no good’과 ‘놋그릇’을 결부시키거나, ‘no touch’와 ‘노다지’를 결부시키는 따위가 모두 음의 유사만으로 연상작용이 일어나는 데서 오는 것이다.
비록 비과학적인 설명과 해석이 있지만, 언중(言衆)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고 어원 의식을 고취시킨다는 점은 그 시대 사람들의 의식세계를 이해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